2020 방글라데시 ③ 기침, 코로나 아니고 미세먼지 때문이에요.
코로나와의 사투가 시작되기 전인 올해 1월,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방글라데시에 다녀왔다. 5년 만에 방문이었다. 올해 다시 방글라데시에 방문할 일정을 계획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다시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 방글라데시 여정을 정리하는 게 조심스러워 미루다 보니 어느덧 여름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정리를 해둬야 할 것 같아 사진도 다시 꺼내 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메모를 모았다.
추위보다 더 두려운 게 있었으니, 바로 방글라데시의 하늘이다. 국제 안전 기준을 한참 넘어선 방글라데시의 대기 질은 대기오염으로 인도와 1, 2위를 치열하게 다툴 만큼 악명이 높다. 대기 중의 오염 물질량을 시민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미국 환경보호국에서 고안한 AQI*(Air Quality Index, 대기질 지수)라고 있는데, 나라마다 시민들에게 경고하는 기준 지수가 다르다. 대개 50 이하면 '보통', 100부터 ‘경고’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200까지는 보통 수준으로 친다. 그만큼 대기 질이 나빠 기준 지수를 높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우리가 머무는 일주일 동안 대기질 지수가 200이 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뿐이었고, 평균을 내니 260이었다. 300을 넘은 날도 하루가 있었다. 이 지수가 600~700이 넘는 날도 있다고 하니 상상에 맡기겠다.
1회 용품 사용을 줄이고 있었지만, 1년 전 인도에서 마스크가 없어 고생한 걸 생각하면 마스크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 번 쓰고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회용 마스크 사용이 꺼려져 마스크 대용으로 손수건과 버프(레저용 마스크)를 챙기고 갔지만, 미세먼지에 맞서 방독면까지 등장했던 인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살면서도 괜찮았어’라며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간과한 것이다. 사실 10년 전의 하늘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최근 남아시아의 대기 질은 심각해졌다. 무분별한 자원 낭비로 발생한 환경파괴인데 다시 일회용품에 의지해야 한다니...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경험하고 나니 일회용 마스크가 내키지는 않았지만, 생존을 위해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었다. 밭을 태워 화전을 일구는 화전 농법, 도로 위 빼곡한 차량에서 내뿜는 배기가스 그리고 사막화, 초대형 산불, 도시화 등 미세먼지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국과 아시아에 밀집된 공장을 빼놓을 수가 없다. 유럽과 북미의 많은 국가는 흔히 굴뚝 산업이라 불리는 수많은 산업의 공장들을 개발도상국으로 옮겼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탄소 배출을 줄여왔고, 덕분에 파란 하늘도 얻었다. 이 불공정한 거래로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은 일자리를 얻었지만, 호흡기 질환, 심장질환 등 많은 질병을 덤으로 얻으면서 건강을 잃었다. 유럽과 북미국가의 파란 하늘이 개발도상국의 희생 결과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고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바람막이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미세먼지 마스크로 코와 입을 막으니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겼다. 밖으로 나오니 뭔가를 태우는 듯한 매캐한 연기 냄새와 쌀쌀한 공기가 가득했다. 바로 코와 눈이 따끔거렸다. 이렇게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되도록 외출을 피해야 하지만, 11월부터 3월까지 외출이 가능한 날이 없을지도 모른다. 미세먼지 때문에 숨을 안 쉴 수는 있다면 숨을 쉬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숨을 쉬는 대로 폐에 먼지가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다. 첫날부터였다. 공항에서 픽업 차량이 오기까지 10여 분 무방비상태로 있었는데, 바로 신호가 온 것이다. 목이 간질간질하더니 이내 폐가 너덜너덜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AQI 지수가 200만 넘어도 호흡기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며, 300이 넘으면 심장 및 폐 질환이 급격히 악화하고 심폐 질환자나 고령자의 조기 사망률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7일뿐. 미세먼지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방글라데시 최남단의 콕스바잘, 북동부의 실렛까지.... 몸으로 쪼개 나눠 다녀도 촉박한 일정이니 부지런히 다닐 수밖에 없다. 제일 먼저 환전과 전화 개통을 했다. 전에 쓰던 심카드를 활성화해 충전해 쓰려 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번호를 쓰고 있어 결국 새로운 번호로 전화를 개통해야 했다. 그렇게 출동 준비를 마치자 코이카(KOICA, 국제협력단) 방글라데시 사무소를 방문하고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며 첫날을 보냈다. 별일 안 한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고 왜 이렇게 몸은 피곤한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만나 반가운데도 자꾸만 눈이 감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자리를 버티고 있으니, 얼굴에 아쉬움이 역력한 데도 자리를 일찍 파하자고 했다.
둘째 날, 콕스바잘로 이동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길을 나섰다. 다카에서 콕스바잘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지만, 버스를 이용한다면 12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내 이동은 모두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공항에 가기 위해 우버로 차를 불렀는데, 길을 못 찾는 것인지 근처까지 와서 한참을 돌다 취소하고 돌아가 버렸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차량이 취소하고 돌아가 버리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이라 근처에는 CNG(씨엔지, 방글라데시에서 택시처럼 이용하는 삼륜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우버와 싸우다 지쳐갈 때쯤 어렵게 잡은 차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새벽부터 공기는 차가웠다. 매캐한 냄새가 가득 찬 도로는 안개도 낮게 깔려 있었다. 개인적으로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방글라데시의 겨울 느낌을 참 좋아하는데, 안개가 짙게 낀 새벽에는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날이 밝아오면 걷히리라 생각했던 안개가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짙어지자 슬슬 불안해졌다. 결국 불안이 현실이 됐다. 공항에 늦지 않고 도착했지만 결국 짙은 안개로 비행기는 지연된 것이다. 그냥 때가 되면 알려주겠지, 하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역시 방글라데시는 내게 설렘을 느끼거나 추억에 잠길 여유 따위는 허락하질 않는다.
보딩 시간이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났는데도 안개는 걷힐 기미도 안 보이고 비행기도 언제 뜬다는 안내조차 없었다. 난민구호 및 귀환위원회(RRRC, Refugee Relief and Repatriation Commission)의 기관장과의 미팅이 오전에 잡혀 있어 우리는 우리대로 속이 탔다. 생각보다 비행기 지연이 길어졌다. 전체 일정은 일주일, 콕스바잘에서 고작 이틀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이었고, 어렵게 잡은 약속 또한 틀어질 수도 있었지만, 하늘이 길을 열어주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속수무책으로 그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RRRC 담당자에게 상황을 공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마음을 비우는 게 상책이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보다 3시간 넘게 지연돼 마침내 안개가 걷히고 하늘길이 열렸다.
*AQI 지수 : 미국은 ‘좋음’(0∼50), ‘보통’(50∼100), ‘민감한 사람에게 건강에 해로움’(100∼150), ‘해로움’(150∼200), ‘매우 해로움’(200∼300), ‘위험’(300∼500) 단계로 나누지만, 인도의 경우는 보통(101∼200), 나쁨(201∼300), 매우 나쁨(301∼400), 심각(401∼500) 단계로 나뉜다.
해외봉사나 KOICA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첫날 진행한 코이카 방글라데시 사무소 현지 직원과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으니 참고하세요. 링크는 ☞ https://youtu.be/A_Xj-U7Z84w (한글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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