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PLS 이혜령 Jun 19. 2020

난민,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2020 방글라데시 ④ 콕스바잘 로힝가(로힝야) 난민캠프에 가다

코로나와의 사투가 시작되기 전인 올해 1월,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방글라데시에 다녀왔다. 5년 만에 방문이었다. 올해 다시 방글라데시에 방문할 일정을 계획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다시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 방글라데시 여정을 정리하는 게 조심스러워 미루다 보니 어느덧 여름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정리를 해둬야 할 것 같아 사진도 다시 꺼내 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메모를 모았다.




안개를 뚫고 도착한 콕스바잘 공항은 5년 전과는 달라진 풍경이었다. 2017년 미얀마에서 로힝가(로힝야)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많은 NGO와 국제기구들이 콕스바잘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인구 50만 명의 작은 도시인 콕스바잘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2017년 발생한 로힝가 난민사태 때문이다.(우리 언론에서는 로힝야로 많이 알려져 있다.) 2017년 8월 25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테러 무장단체에 대한 소탕 작전을 시작했다. 작전의 대상이 테러 무장단체라고 밝혔지만, 아동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됐다. 사실상 로힝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량학살'이었다. 이 작전 이후 74만여 명의 로힝가족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의 국경 사이에 있는 강을 넘어 콕스바잘로 들어왔다. 수십 년에 걸쳐 수만 명의 로힝가족은 박해를 피해 같은 길을 택했고, 그렇게 넘어온 로힝가 난민은 방글라데시 콕스바잘에만 100만 명이 넘는다. 작은 도시에 한꺼번에 수십만의 난민과 수많은 외국인이 들어오면서 치안도 불안해졌다. 치안에 대한 우려가 커진 탓에 외국인에 대한 안전 관리를 위해 외국인들은 콕스바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입국 신고를 하듯 도착 신고서를 작성해 여권 사본과 함께 제출해야 했다. 종이 한 장이 뭐라고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긴장되고 왠지 모를 씁쓸함이 들었다.


비행기 연착으로 결국 난민구호및귀환위원회(RRRC) 기관장과의 미팅은 정확한 시간도 정하지 못한 체 다음날로 미뤄졌다. 난민구호및귀환위원회는 난민과 난민캠프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방글라데시 정부 기관으로 난민캠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출입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기관장의 미팅이 보류되면서 로힝가 난민캠프 방문 일정도 보류됐다. 첫 약속이 어긋나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을 때 그냥 인사치레하는 말이겠지 싶어서 사실상 우리는 이미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렇게 포기하고 다른 일을 보던 중에 전화가 왔다.

"지금 바로 와 줄 수 있어요?"
"우리 잠시 나와 있는데..., 30분 정도 걸릴 거 같아요"
"20분! 20분 안에 오세요. 다음 일정이 있어요."
"바로 갈게요."


다행히 늦지 않고 난민구호및귀환위원회 사무소에 도착했다. 주위로 유엔난민기구(UNHCR), 유니세프(UNICEF) 등 국제기구 사무소가 밀집해 있었다. 커다란 철재 게이트와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 다른 건물들에 비해 다소 위압적인 건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드디어 성사된 난민구호및귀환위원회의 기관장과 만남은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건물에 대한 첫인상 때문이었는지 긴장이 되고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오히려 기관장이 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정우성을 만난 이야기와 KOICA와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기관장과의 미팅 끝나고 난민캠프 출입 허가증을 받고 나니, 시간은 11시 반. 치안 문제로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꾸뚜빨롱 난민 캠프

CNG(오토바이를 개조한 미니 택시)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콕스바잘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꾸뚜빨롱 난민캠프에 도착했다. 현재 방글라데시 콕스바잘에 머무는 로힝가 난민 100만 명 중 70%가 이 캠프에 거주 중이다. 이 캠프는 콕스바잘에서 가장 큰 난민캠프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캠프로 알려져 있다. 전에는 이곳이 산림지역이었지만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아 난민캠프를 늘려나가면서 불과 몇 개월 만에 숲은 사라지고 황폐화되어 버렸다.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땔감을 쓰다 보니 한정된 자원을 두고 나눠 써야 했던 현지인들과의 마찰도 계속해서 발생했다. 그리고 우기가 긴 방글라데시에서 사라져 버린 숲은 재앙이었다.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반복된 것이다. NGO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가스버너를 공급했다. 로힝가 난민 사태 이후 UNHCR(유엔난민기구), WFP(세계식량계획), IOM(국제이주기구), UINICEF(유엔아동기금) 등 국제기구와 100여 개 이상의 국내외 NGO 및 구호단체가 콕스바잘에서 활동 중이다. 이러한 수많은 단체의 활동과 지원으로 하수로와 도로 정비사업이 실시되고 화장실과 거주지가 새롭게 지어져 캠프는 예전보다 많이 안정화된 모습이었다.


캠프 내 러닝센터에서 아이들과 진행한 그림자 책 워크숍


캠프 내 아이들과 함께할 프로그램으로 그림자 책 워크숍을 준비해서 갔는데, 모든 문을 다 닫아도 우리의 예상과 달리 러닝센터 안은 너무 밝았다. 전기 공급이 힘들어 일부러 빛이 잘 들어오게 지은 것인지 듬성듬성 나무를 엮어서 지어 사이사이로 빛이 너무도 잘 들어왔다. 아쉬운 대로 벽 대신 바닥에 빛을 쏘아 진행했다. 끝나고 나니 아이들은 배로 늘어 있었다. 너무 늦게 출발한 탓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다. 꼭 다시 보자!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

로힝가는 미얀마 서부 라카인(Rakhine)주에 거주하고 있는 무슬림계 소수민족(다수가 무슬림이지만 힌두교인도 있다)으로, UN은 로힝가족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이라고 칭했다. 이미 많은 로힝가족이 박해를 피해 미얀마를 떠나 방글라데시와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로힝가 이슈를 처음 안 것은 20만여 명의 로힝가 대량 난민사태가 벌어진 2012년이었다. 미얀마에서 로힝가족에 대한 대량 학살이 발생하자, 로힝가족은 배를 타고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 인접국으로 도피했다. 수십 명이 탄 자그마한 고깃배들이 침몰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거나 국경에 닿기전에 미얀마 국경수비대에 붙잡히거나 살해당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넘어왔지만, 도착한 방글라데시에서도 국경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그때 국경수비대에 애원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국제 사회가 잠깐 관심을 보였지만, 일방적으로 방글라데시에 국경의 문을 열라고 경고하는 수준에서 끝나버렸다. 로힝가에 대한 박해를 종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는 국가는 없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연일 관련 보도가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검색해서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기사를 접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7년, 미얀마 군부는 테러조직 소탕작전을 명분으로 로힝가 부족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 더 큰 비극이 시작되서야 사람들은 로힝가족에 대해 겨우 인지하기 시작했다. 로힝가족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40년이 넘게 (혹은 그 이상) 진행되어 왔고 학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로힝가의 뿌리를 두고 로힝가족은 스스로 9세기경 아랍 상인의 후손으로, 다수 미얀마인은 영국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노동자로 미얀마로 들어왔다고 주장해 의견이 갈리고 있다. 로힝가 난민에 대한 국내 언론 기사에 달린 수많은 악플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후자 쪽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과거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가해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느끼며 피해자를 적대화하고 학살의 지지자가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켰을 뿐 아니라 후자는 미얀마 군부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백번 양보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학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라는 원칙은 언제 어디서든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로힝가 난민과 콕스바잘의 현주소

2017년 로힝가 난민 사태 후, 방글라데시-미얀마 정부는 협상을 통해 로힝가 난민 조기 송환을 위한 약정에 합의했다.(2017.11.23.) 하지만 로힝가 난민의 신변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중단되었다. 로힝가 난민에 대한 송환이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지만, 실제 송환이 실행될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로힝가 난민 사태로 수많은 국제기구와 NGO, 구호단체가 들어선 콕스바잘은 지역 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콕스바잘의 현지 예술가들은 국제 NGO의 프로그램을 통해 난민캠프 아동 예술 교육 지원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로힝가 난민-원주민과의 공존 사례 또한 늘고 있다.

하지만 100만 명 난민 수용 이후, 산림이 훼손되고 식수가 오염되는 환경문제와 미얀마로부터 마약(야바) 및 무기 밀매, 성매매 등 치안에 대한 불안도 증가하고 있다. 커다란 비극 앞에 방글라데시와 콕스바잘의 주민들이 국경의 문을 열어 로힝가 난민을 받아주었지만, 난민 유입 증가로 콕스바잘 지역의 생필품 가격 상승, 노동자 임금 하락 등 경제적인 타격과  난민 지원에 따른 경제적 부담 등 난민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 방글라데시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멈춰야 한다. 인도주의적 지원을 넘어 미얀마의 군사행동을 멈추게 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응 등 국제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로힝가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절실하다.


백만 가지의 삶, 백만 가지의 꿈

2012년, 방글라데시에서 처음 로힝가 난민에 대해 알게 된 이후 로힝가 난민에 대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많은 글을 써왔다. 하지만 이번 방문 후 나 역시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본 것을 가지고 전부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다행히 우리가 만난 난민 중에는 ‘멍한 눈’, ‘공포에 질린 아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은 없었다. 분명한 건 ‘로힝가는 이렇다’, ‘난민은 저렇다’ 몇 가지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이고, 아이들은 공부하고 뛰어놀고 어른들은 일하며 그들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100만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100만 가지의 모습으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이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난민 캠프내 건설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로힝가 난민

로힝가족에 대한 탄압은 왜 시작되었나요?

미얀마는 로힝가족을 불법체류자로 간주하여 수십 년간 시민권부터 교육, 결혼, 출산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이동의 자유와 보건 의료를 받을 권리까지 박탈했다. 이후 로힝가족은 강제노동에 동원되거나 집단적 강간과 학살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해 왔다.

1920년, 민족주의 운동으로 종교 및 민족 간 갈등으로 확대
1982년, 시민법 제정되어 <소수민족 탄압 정책> 시작, 로힝가족 시민권 박탈, 개인의 재산 몰수
1978~1991년, 로힝가족 25만 명 방글라데시로 탈출 및 추방
2012년, 불교도-무슬림 간 유혈 충돌로 20만 명 난민 발생
2012~2015년, 보트피플 증가 (대다수 국가가 난민 수용 거부)
2016년, 로힝가 강제 소개 작전으로 8만 명 방글라데시로 피난
2016년, 아라칸 로힝가 구원군(ARSA) 결성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로힝가족 반군 토벌 작전으로 74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
2017년, 방글라데시-미얀마 난민 조기 송환을 위한 약정 합의
2019년, 방글라데시 정부, 로힝가 난민에 대한 무인도 집단 이주 계획 (재)발표

<코로나19 이후 동향>
2020년 3월 8일, 방글라데시 내 코로나19 확진자 최초 발생
2020년 3월 26일, 코로나19 확산으로 방글라데시 임시 휴무일 발표 (사실상 봉쇄령 발표)
2020년 4월 8일, 콕스바잘 난민캠프 및 인근지역 전격 봉쇄 발표, 의심환자 1,900명 격리 및 검사 시작
2020년 5월 14일, 로힝가 난민캠프 내 코로나 첫 감염자 발생
2020년 5월 30일, 로힝가 난민캠프 내 코로나 첫 감염사망자 발생
2020년 5월 30일, 봉쇄령 조치 완화, 산업 활동 재개
2020년 6월 15일, 이동제한 조치 6월 30일까지 연장 발표 (휴교령 연장 발표 3.17~8.6)
2020년 6월 16일, 15개 국가 국제선 항공편 운항 중단
2020년 6월 18일, 코로나19 확산으로 발생지역 임시휴무 및 통제 조치 예정 (18일 기준 , 확진자 102,292명/ 사망자 1,343명)
2020년 6월 24일~, Cox's Bazar 포함 3개 지역 임시휴무 선포 (이동 제한 등 조치)


유튜브에서 로힝가 난민캠프 방문 영상을 볼 수 있어요. 링크는 ☞ https://youtu.be/J054b7UyPh8


이전 글 | 하늘아, 제발 




이전 03화 하늘아, 제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