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방글라데시 ⑥ 이상한 동행
코로나와의 사투가 시작되기 전인 올해 1월,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방글라데시에 다녀왔다. 5년 만에 방문이었다. 올해 다시 방글라데시에 방문할 일정을 계획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다시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 방글라데시 여정을 정리하는 게 조심스러워 미루다 보니 어느덧 여름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정리를 해둬야 할 것 같아 사진도 다시 꺼내 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메모를 모았다.
다시 이동, 콕스바잘에서 실렛으로
어느덧 4일 차. 다시 이동해야 한다. 최남단에서 위치한 콕스바잘에서 북동부의 실렛까지는 버스로 최소 17시간, 항공 또한 직항이 없어 다카를 거쳐야만 이동이 가능하다. 안개로 하늘길이 불안하지만, 하루를 꼬박 차를 타고 이동할 자신도 시간의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도로 봉쇄나 하탈(Hartal)이라고 불리는 동맹파업 등 변수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고, 일정 앞뒤로 방글라데시 북부 퉁기에서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모이는 종교 집회까지 잡혀 있었다. 안전과 시간 절약을 위해 고민할 것도 없이 비행기를 이용해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확인했다. 다행히 어제보다는 하늘이 맑았다. 지연 없이 바로 비행기가 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는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다. 콕스바잘의 하늘이 아무리 맑더라도 다카에서 비행기가 와야 그 비행기에 타고 갈 수 있는데, 다카에서부터 짙은 안개로 비행기가 발이 묶인 것이었다. 다카에서 비행기를 다시 갈아타야 했던 우리는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항공사인데도 연결편까지 한꺼번에 탑승 수속을 하는 것은 되지 않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노선도 다 지연된 거라 문제가 없을 거라고만 했다. 괜찮다는데 그 말에 더 불안해지는 이유는 뭘까. 비행기는 결국 3시간이나 지연돼서야 탑승할 수 있었다. 원래 다카에서 실렛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다.
이번에는 갈 수 있을까?
콕스바잘의 지상직원과 승무원 모두 연결 탑승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고 우리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건만, 다카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린다는 비행기는 우리가 다시 탑승 수속을 위해 이동하는 동안 실렛으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같은 날 실렛행 비행 편이 매진이거나 좌석이 3개 이상 남은 항공도 없다고 했다. 환불을 원한다면 100% 환불을 해줄 것이고, 아니면 공항을 벗어나지 말고 공항 내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확답은 못 못하겠지만, 자리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낚시성 정보를 밑밥처럼 던졌다. 이 말을 믿고 기다리자니 미련한 것 같고 이번에도 실렛은 포기해야 하나, 울고 싶었다. 실렛은 내가 2년간 활동하며 살았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방글라데시에 왔을 때도 시간이 맞지 않아 실렛행을 포기했었다. 다음에는 꼭 가야지 한 게 5년이나 흘러버린 것이다. 정작 사람들을 만날 시간도 없으면서, 비행기를 놓치자 친구들의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더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울상이 된 내 얼굴을 보고 두 동생은 여기 와서 포기할 수 없다며 기다리자고 했다. ‘여기서 쉬면서 기다리면 돼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모두 지쳐 있었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실렛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에게 연락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가 짜증이 몰려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어도 이건 아니지…….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은 훨씬 지나 있었다. 생각해보니 첫날을 제외하곤 점심을 먹은 날이 없었다. 일정에 쫓겨 점심은 으레 생략했다. 공항 내에서는 식사할 만한 곳이 없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공항 대기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다시 모든 항공사 카운터를 돌았다. 오후 비행기는 모두 매진됐지만, 저녁 시간에는 좌석이 여유가 있는 게 있었다. 좌석이 생길지 말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티켓을 계속 기다리느니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여정을 변경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시 구한 비행기 출발 시각은 저녁 6시. 밥이라도 먹고 다시 오자며 우버를 불렀지만, 차가 잡혀서 오다가 취소되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버렸다. 결국 이 시간에 나갔다가는 공항으로 돌아오는 게 문제가 되겠다 싶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동행
다행히 이번 비행기는 지연 소식은 없었다. 겨울이라 해는 일찍 저물었고 공항 외딴곳에 환한 불을 켜고 덩그러니 세워져 있던 비행기는 모기에 점령당해있었다. 수천 마리는 될 것 같았다. 현지인들은 수백만, 수십억 마리라고 엄살을 피웠다. 이륙하기 전 승무원들이 항공기 복도를 오가며 연신 모기약을 뿌려댔다. 모기약을 뿌리면 시커먼 모기떼가 흩어졌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른 게 민망했는지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승무원이 지나간 길로 이내 웃음과 비명이 뒤섞였다. 모기 좀 어떻게 하라고 했던 승객들은 이내 모기뿐 아니라 사람도 죽이겠다며 농담 섞인 핀잔을 놓았다. 모기를 다 없애려면 정말 승객 절반은 쓰러져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도 각자 부채질을 하며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고, 비행기는 모기와 동행의 길을 선택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저녁 8시. 점심은 단골 식당, 저녁은 방글라데시 엄마 밥을 먹으려고 했던 소소한 계획은 어긋나 버렸다. 셋 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특히 막둥이의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저녁도 그냥 나가지 않고 호텔에서 먹고 일찍 쉬기로 했다. 비행기 일정이 틀어지면서 모든 약속을 다음 날로 미루는 바람에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실렛의 가족들, 친구들과의 약속 또한 보류해야만 했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도 못 만나고 가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과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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