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PLS 이혜령 Jun 11. 2020

방글라데시가 원래 이렇게 추웠어?

2020 방글라데시 ② 짧지만 강력한 방글라데시의 겨울

코로나와의 사투가 시작되기 전인 올해 1월,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방글라데시에 다녀왔다. 5년 만에 방문이었다. 올해 다시 방글라데시에 방문할 일정을 계획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다시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 방글라데시 여정을 정리하는 게 조심스러워 미루다 보니 어느덧 여름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정리를 해둬야 할 것 같아 사진도 다시 꺼내 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메모를 모았다.




여기저기서 벵골어가 들려오자 비로소 도착을 실감했다. 우리는 마치 이곳에 처음 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낯설고, 낯설지만 또 익숙한 모습에 안심이 되면서도 뭔가 씁쓸했다. 이제 겨우 공항일 뿐인데.... 전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보였다. 2017년 로힝가 난민사태 이후 콕스바잘 난민캠프에 국제기구 직원들이 많이 파견된 탓일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주변을 관찰하다 보니 유독 우리 줄만 줄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까다롭게 하길래...' 걱정과 함께 느린 일 처리에 짜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입국심사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걸... 게다가 자정에 가까운 시간, 지친 직원들도 이해가 됐다. 벵골어 뽐내니 ‘벵골어를 하는 외국인’이라며 옆 라인 입국심사관도 활짝 웃으며 관심을 보였다. 사실 벵골어를 쓸 일이 없어 많이 잊어버렸는데, 벵골어로 호감을 줘야겠다는 압박감에 쓸데없이 말만 길어졌고 결국 질문들만 더 많아졌다. 그야말로 횡설수설하느라 땀만 삐질삐질. 입국심사대에서는 묻는 말에만 간략하고 정확하게 하자고!


기나긴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까지 찾고 나니 시간은 자정이 넘어 있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이번에도 이동만 하다가 하루를 다 써버렸다. 지난해 이낙연 (전) 총리의 방글라데시 방문을 계기로 추진되고 있던 한국-방글라데시 간 직항노선 사업이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11월부터 운항을 시작했어야 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의 운항 허가가 계속해서 지연되어 아직 신설되지 못했다. 보통 비행시간은 8~9시간 안팎이지만, 연결 편으로 인해 대기시간이 길어 한국-방글라데시 노선은 최소 12시간에서 24시간이 걸린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 때라면 항공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이번처럼 정해진 짧고 빡빡한 일정의 출장에 직항 노선을 이용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정규 노선은 아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방글라데시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대한항공의 특별기가 운항되어 방글라데시와 한국을 바로 잇는 직항노선이 비로소 떴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까지 불과 5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공항 밖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철조망 넘어 보이는 수많은 인파와 낯선 외국인에게 쏟아지는 그들의 시선 그리고 무장한 공항 경비대, 후텁지근한 공기, 낯선 냄새.... 방글라데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모습에 놀라워(기겁)하지만, 우리는 긴 시간의 공백에도 너무도 익숙하게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1월 깊은 밤이라, 후텁지근한 공기 대신 예상치 못한 추위가 우리를 맞았다. 1월의 방글라데시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쌀쌀했다. 출국 전 준비물로 다들 하나같이 따뜻한 겨울옷과 전기장판을 얘기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한국은 더 추운 겨울이야, 우리는 그 정도 추위는 괜찮다며 큰소리쳤는데 이렇게 오자마자 후회할 줄은 몰랐다.


도로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늦은 시간이라 교통은 그다지 혼잡하지 않아 지인의 집에 금방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라 대충 짐 정리를 하고 씻고 잠자리를 정할 시간. 커다란 침대 옆으로 매트리스를 하나 더 깔아 잠자리를 준비해줬는데, 날이 추워 셋이서 한 침대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자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수다가 끝이지가 않았다. 내일부터 강행군 일정이라 설렘은 잠시 보류해두고 억지로라도 자야 했다.


아직은 캄캄한 새벽. 5시쯤 됐을까? 먼 곳에서부터 새벽의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슬람 사원에서 아침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다. "언니들, 언니들도 아잔 소리에 깼어요?" 양 옆으로 자고 있는 동생들이 깰까 누워 어두운 방에 눈만 멀뚱히 뜨고 아잔 소리를 감상하고 있는데, 모두 다 깨어 있던 거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막둥이의 목소리, "언니들, 그런데 방글라데시 너무 춥지 않아요?"

"응, 우리 이번 일정 동안 싸우면 안 되겠다. 계속 이렇게 붙어서 자려면."

"새벽이라 추운 거겠지? 낮에는 괜찮겠지?"

"낮에도 쌀쌀하다고 했어. 그런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

"저 반팔만 가지고 왔는데... 망한 거 같아요."


이전 글 | 오랜만이야, 방글라데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