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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Jan 24. 2024

해방공간, 미군정의 문고리권력

책 『1945년 해방 직후사』

우리는 해방 후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45년 해방 직후사』는 일본 패망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결성과 조선인민공화국으로의 전환 등 굵직한 사건을 제외하고 제대로 기록되거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출발점이 된 1945년 해방 직후 단 몇 개월의 짧은 역사를 다룬다.


총독부의 종전 대책과 여운형 교섭, 여운형의 건국 준비 활동, 한민당 계열의 맞대응, 미군정의 알려지지 않은 정책 결정자, 선교사들의 무책임한 정책적 조언, 해방 이후에도 이어진 총독부의 공작.... 책에는 처음 듣는 생소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3가지를 명심하며 보면 좋을 것 같다.      


우선 해방 직후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았던 민족지도자, ’여운형‘이다. 일제 패망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한국인이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방공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해방의 기운을 만끽하는 해방공간의 모습은 여운형이 세계사의 큰 흐름으로부터 1942년 이미 일제의 패망을 예측하고 해방을 대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방정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여운형이었다.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정확히 판단하고 일제의 패망과 한국의 해방, 그 뒤에 이어질 건국 문제를 주체적으로 준비했기 때문이다. 준비된 대책과 정책, 조직적 역량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여운형은 특유의 교섭력과 친화력, 자신감 등을 발휘해 조선총독부와 5개 조 합의에 도달했다. 총독부는 소련의 대일 개전 이후 소련군의 한반도 석권을 우려했으며, 8월 10일 일본의 카이로 선언 수락 통보 이후 본격적으로 종전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여운형에게 치안유지 협력을 구하고자 했던 총독부의 대책은 대실패로 귀결되었다. 치안유지 협력이 아니라 사실상 행정권 이양이라는 원하지도 않았고 가능하지도 않은 경로로 해방 후의 남한 사회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p.180    


두 번째는 카이로선언이라는 국제적 합의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이 최초로 언급되어 이후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을 거쳐 모스크바 3상회의까지 한반도의 미래가 다뤄졌다. 카이로 선언은 "상기 강대국은 한국인들의 노예 상태에 주목해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에 자유와 독립을 회복케 한다"라는 한국 조항을 통해 ’한국 독립‘을 최초로 언급한다. 이 책에서는 ’한국 독립의 국제적 공약이자 신탁통치에 대한 국제적 합의라는 양면적 결정’(31쪽)이었던 카이로 선언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룬다.   

   

카이로선언에 따라 해방국이 되어야 할 한국은 점령국으로 취급되었고, 적대적 점령지가 되어야 할 일본에는 간접통치하에 주권 정부가 기능하고 있었다. 한국은 태평양 지역에서 유일하게 군정이 실시된 지역이며, 적대적 점령하에 주권 정부가 부인된 군사통치 지역이었다. 카이로선언이라는 국제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졌으므로, 한국인이 어떠한 국제적 합의나 절차에 대한 존중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p.365


마지막은 미군정의 통역과 정책 자문을 하며 권력을 누린 문고리 권력 선교사와 기독교 그룹, 그리고 노련하게 정치적 권력을 손에 쥐는 한민당, 이승만 등 해방공간 권력을 갖기 위해 펼친 공세들이다. ‘친일파로 가득했던 한민당 세력이 해방 직후 주도권을 잃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책을 보다 보면 오늘날 정치권을 보는 듯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지난해 보았던 <서울의 봄>도 떠올렸다.


야심만만했지만 서툴고 현실을 외면하다시피 한 좌익의 모험주의와 무책임성, 일제강점기 이래 경제 사회 문화적 우위를 점했지만 정통성이 결여된 우익의 물불 가리지 않는 정치적 욕망과 책략, 용의주도했던 조선 총독부의 종전 대책과 공작, '순진'했으나 미국의 시대를 수년 앞서간 미군정의 초기 판단과 정책, 미군정 초기 하지의 알려지지 않은 개인적 정치고문들의 역할, 용감하고 혁명적이었으나 테러와 공작의 희생자가 된 여운형의 이야기 등이 여기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p.23


하지는 ‘태평양 전쟁의 패튼’, ‘군인 중의 군인’이라는 평을 들었으나, 정치적 임무나 행정을 맡아본 적이 없었으며, 특히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었다. 그의 참모들도 전투 요원이었을 뿐, 군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아시아에 대한 기초적 소양이 없었다. (...)단지 한국과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택되었을 뿐, 복잡한 한국 점령 업무를 맡기에는 부적합한 인물이었다.  p.34


윌리엄스는 의사였을 뿐 훈련된 통역이나 박식한 정치고문이 아니었고, 그의 개인적 견해는 워싱턴의 고위급 정책과 일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윌리엄스는 "노련한 한국 정치인들의 책략"에 취약했고, 그의 종교적 배경, 교회 커넥션으로 말미암아 초기 미군정이 한국 내 기독교 그룹, 교육받은 엘리트, 선교사 사회의 의견과 필요에 경도되었으며, 한국의 우익, 특히 기독교 엘리트들이 미군정을 지배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p.231


한민당은 이러한 미군정 계획의 제안자이자 기획자였고 협력자이자 집행자였다. 이승만의 독촉중협 회의록에 따르면 군정의 최고기밀인 신탁통치 계획에 대해 군정당국은 이승만, 송진우, 장덕수, 허정 등 핵심 인물에게만 정확히 통보했다. p.398


근거 없는 주장과 농간, 이간질, 가짜 뉴스(거짓말이라도 최소한의 성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등 최소한의 양심도 사라진 정쟁 싸움. 어이없지만 허무하게 나라의 미래는 결정되었고, 그 과정들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졌다. 결말을 알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는 만약도 반전도 없다. 해방을 향한 간절했던 염원과 새로운 나라에 대한 한국인의 뜨거운 열망은 무시되었고, 잔혹한 대학살과 전쟁이 이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로 현재까지 남북 분단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결말을 알고 아무리 애를 태워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덜어낼 수는 없었고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과 분노 그리고 씁쓸함이 되풀이되었다.      

그럼에도 현대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책!!



2024.01

1945년 해방 직후사

정병준 지음 | 돌베개, 2023

분야/페이지 | 역사 > 한국현대사 / 454쪽


책계정 | @boi_w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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