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에 닿는 것들이 나를 설명한다

소재의 기억, 촉감의 언어

by 정감채

살에 닿는 것들이 나를 설명한다. 옷감의 촉감, 타월의 무게, 립밤의 밀도, 로션을 바를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피부의 반응까지. 아무리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 내게 어떤 하루가 어땠는지를.

어릴 적 엄마가 덮어주던 이불의 촉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손등에 부드럽게 얹히던 이불의 무게, 등 뒤를 감싸던 약간의 따뜻함. 그 기억이 있기에 나는 지금도 너무 가벼운 이불을 싫어한다. 어떤 촉감은 단지 물리적인 게 아니라, 정서적인 무게다.


스카프를 고를 때 나는 색보다 질감을 먼저 본다. 조금 거칠어도 좋고, 보드라운 촉감은 더 좋다. 내 목에 닿는 그 재질이, 오늘의 기분을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다. 기분이 불안한 날에는 따뜻하고 포근한 것을 찾고, 마음이 번잡한 날에는 매끄럽고 정리된 촉감을 고른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고르고 있더라.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향보다 제형, 색감보다 사용감. 예쁘게 보이는 것보다, 나를 안정시키는 것. 뭔가를 바르는 일은 나를 꾸미는 일 같지만, 실은 나를 만지고, 만지는 그 감각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일이다.


촉감은 언어다. 누구도 읽지 못해도, 나는 안다. 오늘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지금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를, 손끝이 먼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촉감에 진심이다. 그리고 그 촉감이 주는 감정적 무게를 믿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살에 닿는 것들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나를 알고 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좋은 제품은 조용히 오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