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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재 Dec 30. 2017

친환경 선언한 애플의 굴욕?

‘의도적 노후화’로 소송 당한 애플

 애플의 고의적 성능 저하 조치에 대해 프랑스 소비자단체 HOP( Halte à l’Obsolescence Programmée-의도적 노후화 중단)는 12월27일 애플이 ‘계획적 노후화(planned obsolescence)’ 금지법을 위반했다며 형사소송을 냈다. 위반시 최대 2년의 징역형이나 매출액의 5%를 벌금으로 부과받을 수 있다. 이 시민단체는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의도적 성능 저하가 제품 수명 연장을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한 것과 정반대로 해석했다.

애플의 조치를 의도적 제품수명 단축으로 볼 수 있는지는 추후 따질 문제다. 다만 흥미로로운 점은 의도적 노후화가 유럽 시장에서도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4일 유럽연합 의회는 전자제품 제조사가 제품을 쉽게 수리할 수 있고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들라는 권고안을 승인했는데 해당 권고안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표결을 거쳐 통과되면 법적 의무가 된다. 

*관련 내용이 짧게 소개된 아래 글은 지난 11월18일자 경향신문 기사 '스마트폰, 이젠 ‘친환경’으로 말해야'의 미편집본입니다.  



 애플이 20007년 아이폰이 첫 선을 보인 뒤 지난 10년동안 스마트폰은 일상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꿨을 뿐 아니라 환경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스마트폰의 평균 교체주기는 전 세계적으로 약 2.7년이다. 미국과 한국이 26개월, 유럽은 24개월 정도이다. 냉장고의 교체주기가 9년, 세탁기·에어컨이 8년 정도인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 연간 판매량은 지난해 15억대를 넘어섰다. 연간 판매량의 78% 정도가 교체 수요로 추정된다. 버리는 스마트폰이 늘면서 환경부담이 커지고 있다. 


■‘죽음의 시계’를 만드는 혁신

 스마트폰은 알루미늄, 텅스텐, 코발트, 금 등 60여종의 광물을 유리, 플라스틱과 결합해 만든 것이다. 광물 채굴 과정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이용해 환경이 오염된다. 콩고민주공화국과 같은 지역에서는 광물 거래 수입을 놓고 무력 분쟁이 일기도 한다. 스마트폰 생산과정에서 노동착취와 아동학대, 독성물질 흡입에 따른 산업재해의 가능성도 상존한다. 

 광물 채굴과 제련, 메모리칩과 중앙처리장치 등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물이 사용된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애플의 아이폰이 나온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스마트폰 제조에 사용한 전력량은 968테라와트시(TWh)로 추정된다. 인도의 연간 전력 사용량과 비슷한 양이다. 부품과 완성품이 컨테이너선에 실려 세계 각지를 오갈 때도 막대한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스마트폰 생산에 따른 자원·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면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내구성을 키우거나 교체와 수리가 쉽게 만들어야 한다. 삼성·애플·LG 등 주요 제조사들은 배터리와 디스플레이를 일체형으로 만드는 추세다. 심미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프리미엄폰의 전후면을 모두 강화유리로 덮어 수리하기가 불가능하거나 까다롭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메모리 등이 모두 접착제로 단단히 붙어 있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새 폰이 출시될 때마다 기능과 디자인에서의 혁신을 강조하지만 이런 혁신들로 교체나 수리는 더 어려워졌다. 글로벌 사회적 기업 ‘아이픽스잇(iFixit)’의 디렉터 마티아스 휘스켄에 따르면, 교체가 불가능한 배터리는 기기 수명을 결정하는 ‘죽음의 시계’가 된다. 

 전자업계는 이런 설계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려는 의무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예전보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더 놓지 못한다. 화장실에도 가져가고 심지어 샤워를 할 때도 영상을 보니 방수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체형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정을 줄이고, 에너지원을 친환경으로 전환하고는 있다”며 “스마트폰의 수명을 길게 만드는 것이 경제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원 낭비 없앤 순환형 생산 방식으로

 매출과 수익, 경제 성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환경을 위한 선택이 될 순 없다. 제품 수명을 늘려야 온실가스 배출과 자원 소비에 따른 환경부담을 뜻하는 ‘환경 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 유럽 내 최대 응용과학 연구기관인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지난해 말 제품 생명주기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스마트폰을 5년 간 사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3년 사용을 기준으로 할 때보다 약 30%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전자제품 생명주기를 늘리고 환경 발자국을 줄이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4월부터 쓰던 전자제품을 반납하면 포인트나 상품권으로 보상하는 ‘스마트 체인지’ 갬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9월 말 창원1사업장을 친환경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시키는데 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갈길이 멀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제조사가 제품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단계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투명하게 밝히고, 생산단계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로 100%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품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염 물질 없이 깨끗한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재활용 기술에 투자하는 등 생산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앞선 기업은 네덜란드 스타트업 ‘페어폰’이다. 페어폰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주석과 탄탈륨, 텅스텐, 금을 분쟁과 노동착취가 없는 공정거래로 확보했다. 이 회사가 만든 ‘페어폰2’는 디스플레이, 배터리, 카메라, 플래시 등 주요 부품을 모두 사용자가 손쉽게 분해해 교체할 수 있는 모듈 형태로 설계됐다. 모듈폰은 플라스틱과 여러 광물을 재활용하기 용이하다.

 주요 제조사 중에서는 애플이 선두적이다. 애플은 지난해 4월부터 중고 아이폰을 자동으로 분해해 재활용이 가능한 부품을 추출하는 로봇 ‘리암’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유심칩이 담긴 작은 트레이부터 나사, 배터리, 카메라 등을 쉽게 분류해 재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분쇄기에 넣고 간 뒤 금속류만 분류하던 전통적인 재활용 방식에서 혁신을 이룬 것이다. 이미 자사 데이터 센터를 100%를 재생에너지로 돌리는 애플은 2020년까지는 공급망 전체를 100% 재생 가능에너지로 가동하기로 했다. 지난 4월 발표한 ‘환경 책임 보고서’에서는 오직 재활용 소재로만 새 제품을 만드는 완전한 순환형 공급망을 구축하겠다고도 선언했다.


■‘의도적 제품수명 단축’ 제재 나선 유럽

 순환형 생산방식 구축은 미래 경쟁력 확보에도 중요하다. 지난 7월4일 유럽연합 의회는 전자제품 제조사가 제품을 쉽게 수리할 수 있고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들라는 권고안을 승인했다. 권고안에는 제조사들이 제품 수명을 의도적으로 짧게 만드는 이른바 ‘의도적 제품수명 단축’ 제재를 위한 평가 시스템, 그리고 제품의 내구성과 업그레이드 가능성,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을 평가한 ‘자발적 유럽 라벨’의 도입이 포함됐다. 해당 권고안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표결을 거쳐 통과되면 법적 의무가 된다. 이 경우 제조사들이 유럽 시장에서 활동하려면 기존의 제품 설계와 생산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이인성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IT 캠페이너는 “유럽이 순환경제로 나아가면서 의도적으로 제품 수명을 단축시키는 행태를 대대적으로 제제하려는 정책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오래된 생산 모델을 고수하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윤리적 스마트폰” 네덜란드의 스타트업 ‘페어폰’(Fairphone)이 만든 스마트폰은 종종 이렇게 불린다. 페어폰은 2010년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분쟁광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했다. 2013년 크라우드펀딩으로 세계 최초의 모듈러폰 ‘페어폰’을 만들었고 2015년 10월에는 ‘페어폰2’를 선보였다.

 페어폰의 홍보 책임자인 파비앙 휘느는 경향신문에 페어폰에 있는 ‘공정’의 의미에 대해 “아직 100%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뜻한다”며 “분쟁에서 자유로운 광물과 공정무역 금의 사용, 재활용이 가능한 모듈러 설계, 공장의 노동조건 개선과 같은 목표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반 바스 아벨 페어폰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도 지난달 21일 650만유로(약 87억원)의 투자 유치를 발표하며 더 건강하고 공정한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자부품의 수명 연장과 공정무역 금의 확보, 노동조건 개선과 같은 다양한 문제에 있어 전체 시스템의 변화에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페어폰은 사용자가 직접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배터리, 플래시 등을 손쉽게 수리할 수 있다. “10초 안에 폰을 분해해 수리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는 것이 파비앙의 설명이다. 페어폰2의 가격은 525유로(약 70만원)로 출시 당시 가격은 애플의 아이폰6s와 갤럭시S7과 비슷하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모듈 설계를 장점으로 내걸고 승부했다. 

 지난 8월31일에는 새 카메라 모듈을 출시했다. 모듈을 바꾸는 방식으로 새 폰을 사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성능을 높일 수 있다. 휜느는 “제조사들이 혁신을 말하지만 진짜 혁신은 더 이상 없다”며 “많은 예산을 마케팅에 쓰고 있지만 기술적 수준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파비앙은 “페어폰은 애플이나 삼성, LG와 같은 제조사들이 따라올 수 있는 예를 보여줬다”며 “(공정한 폰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우리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전체 산업계가 함께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페어폰의 판매량은 현재까지 14만대로 여전히 틈새상품에 불과하다. 진출한 시장도 아직 유럽뿐이다. 그러나 윤리와 환경을 기업 활동의 중심에 두고서도 충분히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비앙은 “우린 스마트폰이라는 디바이스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며 “스마트폰은 사람이 만들고 그것이 우리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페어폰 측은 페어폰의 한국 출시 계획은 아직 없지만 관심이 가는 시장임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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