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
가끔 카페에서 집중이 안되면, 주변 대화를 듣고 꽂히는 말이 있으면 메모해본다.
여느 때처럼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나는 카페에 앉았다.
노트북과 책, 필기구를 정렬하는 동안 또렷이 한 여자의 말이 들어왔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항상 나는 뒤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어"
맞잡았다기 보다, 이어져 있는 두 손.
수더분한 옷차림의 꾸밀줄 모르는 안경 낀 잘생긴 남학생,
애교 가득한 말투에 이제 대학생이 되어 꾸미기 시작한 여학생.
그들의 시작이 왜 이렇게 불안해보였을까?
드라마 대사인 듯 너무나도 대사처럼 내뱉는 여자의 말들....
"우리가 이렇게 된만큼 너가 더이상 나에게 선 긋지 않았음 좋겠어... 그냥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너한테 궁금했어. 이번에 그래서 너한테 꼭 말하고 싶었어. 근데 감정이 상하더라. (남자의 표정을 확인하면서) 그래도 말하기로 했어.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도 나한테 계속 연락했잖아? 확인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남자가 그 말을 듣고 애매한 듯 미묘하게 싱긋 웃었다.
여자가 귀엽다는 건지, 아님 어쩔 수 없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
"그랬어?"
남자는 여자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여자의 얼굴엔 웃음이 번진다.
손을 잡고 둘은 나갔다. 다음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작하는 연인이라고 보기엔 남자의 태도가 너무 확신이 없어보였다. 그럴거면 왜 시작하는걸까?
세상 사람들은 사랑을 갈망한다.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실체를 궁금해한다. 실망하는 사람이 많을테다. 내 모든 걸 내던지고 누군가의 가슴에 못을 박고 시작했음에도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닌 건 아닌 사랑도 있으니까. 양방향의 사랑은 존재할까? 나만 놓으면 되는 관계였다. 그렇게 혼자 몇번을 놓았다가 다시 잡으면 잡혔다. 왜 그 여학생에게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던걸까. 그 사람의 껍데기만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 그 사람은 나 없어도 언제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을. 그렇게 매달리고 그 사람이 받아주지 않을 때까지 해봐야 알게 된다. 아무리 몇 년을 함께 했어도 그 사람의 일상에 내 생각은 몇 퍼센트 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는 것도 내 몫이고 끝내는 것도 내 몫인데, 그 사람은 절대 이도 저도 하지 않는다. 내 사랑이 다 탈 때까지 태우고, 그재도 깨끗하게 닦아내야 가능한 거였다. 겨우 내 사랑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렸건만, 닦는 것만큼은 너무 힘들다. 1년이 지났고, 이제 너무 이 일상이 소중하다.
시작하는 어린 연인에게 묻고 싶다. "둘의 시간은 유한하니?" ....
그리고 그 여자에게 묻고 싶다. "후회 없이 사랑할 자신, 너의 젊음을 낭비해도 괜찮을만큼 그 남자를 사랑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