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소음의 역습

-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을 아이의 울음 속에서 찾다 -

by 날아올라

이것은 간호사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내면의 비명을 견뎌야 했던 소리의 전쟁터 이야기이다.


가끔 가족이 꿈에 나온다. 꿈에 나타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울의 늪이 깊어질수록 꿈속에선 늘 혼자였다. 아빠와 오빠가 나를 왕따 시키거나, 엄마의 병색 짙은 돌발 행동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곤 했다. 잠에서 깨어 '아, 다행히 꿈이구나'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 아침은 그 자체로 형벌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주는 부끄러움과 그로 인해 감내해야 했던 수치심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불쑥불쑥 나를 흔들어 놓았다.


아이는 유치원에 곧잘 적응해 나갔다.

아침에 가기 싫다고 보채기도 했지만, 나의 퇴사로 인해 전보다 늦어진 등원, 빨리진 하원 덕분에 아이의 정서는 안정되어 있었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의 상태가 전 같지 않았고, 늘 그 미세한 다름을 캐치했다. 역시나 열이 나고 있었다. 38도 전후의 열이 지속되어 이틀정도 가정보육을 하겠고 담임선생님께 전달했다. 발열 이외에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병원에 가도 해열제 먹고 지켜보자고 할게 뻔했다. 아이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좀 더 지켜보고 아이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 병원에 갔다.


주말을 껴서 4일 쉬고 유치원에 갔다 온 아이.

"엄마, 비누방울 가져왔어?"

"00아, 당분간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는 놀이터에서 놀지 않고 집에 가서 놀아야 해.'

"싫어! 비눗방울 하고 싶은데!"


날씨도 따뜻하고 하원하고 놀이터로 바로 향하는 반친구들을 보며 아들은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유치원에서 체력을 다해서일까 모든 상황에 짜증과 떼를 부렸다.


"저녁준비할 시간이네? 엄마가 빨리 맛있는 밥 해줄게."

"싫어, 엄마랑 놀 거야. 혼자 노는 건 싫어!

놀이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양치를 하다가도 아이는 쉴세 없이 떼를 부렸다.


육아를 하면서 종종 과거의 트라우마는 예기치 못한 순간 '트리거'가 되어 나타났다. 아이가 아파 내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를 때, 혹은 아이의 행동이 내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내 안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특히 울면서 떼를 쓰는 아이를 앞에서 보고 있노라면 높은 목소리통제 불능의 상황이 깊은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건드렸다.


"엄마가 이불 가져와!"

아이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울며 애착이불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참아야 한다. 아이는 지금 힘들어서 그런 것이다.


"너 진정되면 얘기하자 다울고 괜찮아지면 엄마 불러."

잠시 안방으로 피신했다.


"엄마가 이불 가져와!"

끊임없이 아이의 울음소리에 문득 과거가 떠오른다.


TV 볼륨을 끝까지 올려놓던 엄마,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며 욕설을 내뱉던 엄마, 갑자기 한복을 입혀놓고 기괴하게 웃던 엄마. 물건을 던지고 머리채를 휘어잡던 그 모든 순간, 작은 몸집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터뜨리며 눈물을 흘려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내 어린 시절은 통제할 수 없는 소음과 예측 불가능한 폭력의 연속이었다.


높은 목소리와 통제 불능의 상황일 때면 고작 어린아이 일 뿐인데, 아이를 다그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 화를 내지 않으려고 낮은 목소리로 일정하게 말하니 감정이 없는 로봇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말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다. 거울 속에는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감정 섞인 목소리의 주인공이 서 있었다. 뒤따라오는 죄책감은 늘 나의 몫이다.


사실 이 날카로운 목소리의 기원은 더 거칠고 치열했던 삶의 현장에 맞닿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트라우마가 정점을 찍었던 시기는 따로 있었다. 서울 빅 5라 불리는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외래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하루 만 명의 환자가 오가는 거대한 병원. 담당한 이비인후과 교수님의 외래 환자는 오전만 해도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150명에 달했다. 시스템상 10분당 초진 2명, 재진 2명을 배정하지만, 그것은 프로그램상의 숫자일 뿐 실제 현장은 늘 아수라장이었다.


귀와 코를 담당하는 파트 특성상, 청각장애 진단을 받으러 온 환자들이 유독 많았다.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일반인보다 한 옥타브 높게 설정되어 있었다.


입사 첫날, 동료 간호사는 내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이 우리 보고 또 환자랑 싸우냐고 할 거야.'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환자와 간호사 사이에 날 선 고성이 오갔다. 하지만 그것은 불친절이 아니었다. 서로의 목소리에 가닿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소통이었다. 나 역시 환자일 때는 간호사의 퉁명스러움을 탓했지만, 막상 그 폭풍 같은 현장에 서보니 웃으며 친절하기란 거의 부처의 영역에 가까웠다.


"어르신, 이쪽으로 오세요!"

"이 검사부터 하셔야 해요!"


반복되는 외침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 선 감정이 실려 나갔다. 불친절하고 싶은 간호사는 없다. 다만 매 순간 내 목소리를 상대의 귀에 닿게 하기 위해 영혼을 쥐어짜고 있었을 뿐이다.


병원을 가득 채우는 고성은 어린 날의 삼켜야 했던 비명과 겹쳐졌고, 파도처럼 쏟아지는 환자들은 나를 짓누르던 감당할 수 없는 환경과 닮아 있었다. 내 안에는 소음과 무력감, 그리고 응답받지 못한 자의 불안이 뒤엉켜 매일매일 요동쳤다.


이비인후과에서의 그 치열했던 소통의 사투는 퇴근 후에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이런 변화에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 물었을 때 그가 한 번에 대답하지 않거나,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게 만드는 상황이 오면 나는 참을 수 없이 성질을 부렸다.


"내 말 안 들려? 왜 대답을 안 해!"


그리고 말을 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무의식 속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폭발적인 분노를 감내해야 했다.


사실 그것은 남편을 향한 화가 아니었다. 내 안의 깊은 허기를 향한 비명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내 말에 단 한 번도 온전한 대답을 해준 적이 없었다. 무엇을 물어도 이상한 말만 늘어놓거나, 벽을 보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내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질 때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답답함과 버림받은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나에게 대답은 곧 존재의 확인이었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소리를 질렀던 것도,
남편에게 한 번에 대답하라고 다그쳤던 것도,
그리고 지금 아이의 울음소리에 무너지는 것도,
결국 "내 목소리가 들리기는 하는 거냐"라고
세상에 묻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해 내 목소리를 닿게 하려 애썼던 사투는 결국 내 몸의 반란으로 끝이 났다. 가족과의 완전한 단절을 위해 '가족관계 해체 및 미부양 사유서'를 작성하며 과거의 사슬을 끊어내려던 무렵, 공황장애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처음 겪는 증상이었다.


외부의 소음을 견디다 못한 내 몸이 이제는 안에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 없이 하루 종일 요동치는 심장 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내 귓가를 때렸고, 그 거대한 내면의 소음 때문에 더 이상 환자의 목소리도, 세상의 목소리도 온전히 들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했다.


지금은 병원을 떠났고, 이제 내 앞에는 과거의 엄마도, 수백 명의 환자도 없지만, 그들보다 더 강렬한 소음을 내뿜는 작은 존재가 있다. 아이가 악을 쓰며 울 때마다 내 심장은 다시 그때처럼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의 울음은 나를 괴롭히려는 소음이 아니라, "엄마, 내 말 좀 들어줘"라는 가장 간절한 응답의 요청이라는 것을. 내가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하지만 듣지 못했던 그 대답을 아이는 온몸으로 내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로봇 같은 목소리 대신, 조금은 떨리더라도 다정한 목소리를 골라본다. 과거의 나를 닮은 아이에게, 내가 듣지 못했던 그 '대답'을 들려주기 위해서. 이것이 내가 공황이라는 소음을 뚫고 아이와 함께 써 내려가는, 조금은 시끄럽지만 치열한 '이중육아'의 기록이다.



오늘의 증상

아이의 고음이나 반복적인 떼쓰기가 들리면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가빠질 때.

상대방의 무응답이나 무시에 과도하게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내가 내지르는 날카로운 목소리에서 내가 혐오하던 누군가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자책할 때.


마음통찰

당신이 지금 고통스러운 이유는 아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당신 안의 '응답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현재의 소음을 위험 신호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당신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졌지만, 지금 당신 앞의 아이는 당신의 대답 하나로 온 우주가 평온해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이의 울음은 소음이 아니라 "나를 봐달라"는 신호임을 인지할 때, 비로소 당신의 심장 소리도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 처방전

1. 5초간의 '청각적 거리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트리거가 되어 분노가 올라올 때, 잠시 눈을 감고 '이 소리는 과거의 비명이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가능하다면 잠시 다른 방으로 피신하여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시며 신체적 온도를 낮추는 것이 '로봇 모드'보다 건강한 방어 기제가 됩니다.


2. '존재 확인'의 대답 연습

대답이 존재의 확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신이기에, 아이에게 "응, 엄마가 듣고 있어. 네 목소리 여기 잘 도착했어"라고 말해주는 연습을 해보세요. 아이에게 건네는 이 대답은 사실 당신 안의 응답받지 못했던 내면아이에게 건네는 가장 강력한 치유의 언어입니다.


3. 내면의 소음 기록하기

공황장애처럼 내면의 소음이 커질 때는 그것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글로 뱉어내세요. 지금처럼 에세이를 쓰는 행위 자체가 가장 좋은 처방입니다. 비명을 문장으로 옮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통제 불능의 소음이 아니라 당신 삶의 서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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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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