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를 깨뜨린 낯선 상처와 엄마라는 이름의 경계태세 -
퇴사 후 거실에 감도는 고요는 마치 낯선 손님 같았다. 7년 동안 몸담았던 병원을 떠나고, 아이를 유치원에 적응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허락되었다. 하루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러나 평화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아침은 여전히 폭풍이었다. 7시 40분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등원 전쟁. 병원 시스템은 10분 단위로 착착 돌아갔지만, 아이와의 1분은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침밥을 챙기고, 가방을 점검하고, 씻기고 입히는 과정을 거쳐 8시 50분 유치원 버스에 아이를 태우고 나면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을까 봐 조바심을 내며 아이를 재촉했고, 나도 모르게 내지른 큰소리에 놀란 아이의 얼굴을 보며 후회의 늪에 빠지곤 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앉아 비로소 나의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늘 과일식이다. 당 흡수를 돕고 위 활동을 줄여주는 과일은 지친 속을 편안하게 달래주었다. 앙상하게 말라 40kg까지 떨어졌던 몸이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를 내비치기 시작했다는 건 내게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었다. 다음 주부터는 헬스장에서 PT도 시작하기로 했다. 이제야 조금씩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평화는 영원할 것 같았지만, 3월 중순이 지나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의 등원 거부가 심해진 것이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보채는 날들이 늘어났고, 그러던 어느 날 목욕을 시키다 아이의 손목에서 빨갛게 부어오른 상처를 발견했다.
"00아, 유치원에서 다쳤어? 상처가 있네."
"친구 00 이가 장난감으로 때렸어. 그래서 선생님한테 말했어. 00이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어."
아이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내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간호사로서 수많은 외상을 보아온 이성은 '아직 다섯 살이니까,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지'라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직관은 다른 신호를 보냈다. 작은 상처에도 연락을 주던 어린이집과 달리, 유치원 측의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바빠서 깜빡 하셨겠지.' 애써 불안을 억눌렀다.
밤마다 악몽을 꾸는 듯 잠꼬대가 심해지는 아이를 달래며, 금요일 아침 겨우 유치원에 보냈다. "오늘만 다녀오면 주말이야. 엄마 아빠랑 같이 있자." 그 약속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무거운 인내였을까.
오후 4시 하원 시간. 버스에 앉아있는 아이를 보며 느낌이 싸했다. 평소라면 "엄마!"를 외치며 달려왔을 아이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표류하고 있었다. 수많은 환자를 처치하던 차가운 이성이 본능적으로 작동했다. 이건 단순히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하원 버스에 두고 내린 도서 가방을 찾기 위해 다음 차를 기다리던 중, 같은 반 친구 엄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00 이는 등원 거부 안 하나요? 친구가 때렸다는 말은요?"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한 아이가 반 친구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밀쳐서 바닥에 머리를 찧게 하고, 장난감으로 때려 코피를 터뜨리고, 명치를 때려 피멍을 들게 하는 일들이 학기 초부터 반복되고 있었다. 피해 아동만 여러 명이었다. 주말에 엄마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는 말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것은 보호자로서의 의무인 동시에, 내 안의 본능적인 경계태세였다.
엄마들의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는 참혹했다. 가해 아동의 부모는 자기 자식의 행동을 "때린 게 아니라 좀 밀었다더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진심 어린 사과조차 없었다고 했다. 원에서는 일단 지켜보며 훈육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엄마들의 격양된 목소리 사이에서 나 역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억지로라도 차가운 이성을 붙잡으려 애썼다. 7년간 병원에서 수많은 갈등과 민원을 조율하던 직업적 습관이 있었으니까. 상대방의 입장이라는 필터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사실 겁이 났다. 내 아이 역시 언제든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섣부르게 나섰다가 자칫 진상 엄마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운 마음도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한 엄마의 고백은 그런 나의 불안을 더 깊게 만들었다.
평소 활달하고 싸움 놀이를 좋아하던 아들을 둔 그녀는,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오히려 자기 아이가 원인을 제공했을 거라 짐작했다고 한다. "친구랑 장난치다 그런 거 아냐? 싸우지 말라고 했지!"라며 아이를 호되게 몰아세웠던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대등한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폭력이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 크게 무너졌다고 했다.
아이가 겪었을 공포보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의 엄마'가 될까 봐 먼저 자식의 입을 막아버렸던 그 마음. 그 처절한 자기 검열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무언가는 여전히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홀로 공포를 감내해야 했던 작은 아이의 무력감이었다. 엄마의 돌발 행동과 폭력 앞에서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던 그 캄캄한 심연.
'내 아이만큼은 그 심연에 빠지게 두지 않겠다.'
생존자로서의 본능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이성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려 노력해도, 아이의 손목에 남은 상처는 단순한 사고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내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오래된 흉터를 사정없이 건드렸고, 동시에 묻고 있었다.
"너는 이제 네 아이를, 그리고 너 자신을 지킬 준비가 되었니?"
며칠 전 아이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친구가 때렸다는 그 말은 살려달라는 신호였고,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몸부림은 자신을 지켜달라는 처절한 요청이었다. 아이의 손목에 난 그 상처가, 내가 외면하려 했던 세상의 진실을 아프게 파고들고 있었다.
마음처방전은 다음화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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