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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속도 제로

아무것도 하지않고 아무데도 가지 않은 날

by 이웃의 토토로

잠시 깨어나기도 했지만 11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몇 달 만에 토요일 오전을 푹 자면서 보냈다. 주말에 계획없이 생각없이 나가야 하는 목적도 없이 그냥 있는게 무척 오랫만이다. 포트로 물을 끓여서 꽃 향과 산미가 있는 믹스를 뜯어서 커피를 한 잔 만들었다. 간단한 빵 하나와 함께 아침을 먹은 것으로 했다.


잠들기 전에 계획했던 계란 후라이와 빵으로 먹으려던 모닝 브런치는 시간을 넘겨서 늦어버렸다. 12시가 훌쩍 지난 후에 밥을 챙겨서 먹고 서재의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몇 개의 앱을 흘려보내고 유튜브를 넘기면서 빈둥거렸다. 코스트코와 큰 마트를 가기로 했던 계획도 밀렸다. 이렇게 있으면 밖에 나가고 싶어지지 않는다. 편의점을 가더라도 씼고 준비를 해야 나가는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다.


움직임이 별로 없는 하루인데 낮에도 피곤함에 졸음이 몰려왔다. 침대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이 들었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맛있는 것을 잘 챙겨서 먹고, 푹 자는 거라고 들었는데 오늘은 먹고 자는 것으로 채우고 있다. 흐려지고 차가워지는 날씨 탓에 집은 적당히 어둡고 쌀쌀함이 감돌고 있다. 와이프와 함께 마루에서 뉴스를 몇 번 보고, 과자를 몇 개 뜯어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었다. 추워질때 따뜻해지는 집 안에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찾게 된다. 평소보다 차도 두 잔 이상 더 많이 마시고 있다. 해가 진 후에는 보일러를 켜서 집안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발바닥에 따뜻함이 전해져 온다.


하루를 빈둥거리면서 걱정없이 지내본 것이 거의 일 년 도 넘은 것 같다. 오늘은 책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뉴스 기사를 뒤적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스마트폰도 옮겨 다니는 자리 옆에 그저 가져다 둘 뿐이다. 화면에 뜨는 push notification도 힐끔 쳐다만 보고 말았다.


열심히 일을 한 후에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멈추는게 필요하다. 전환의 속도를 0으로 만들어서 리셋하는 느낌이랄까. 하루의 길이를 쉼표나 마침표를 찍는데 쓰는 느낌이다. 아직 내일의 계획이 없는데 오늘처럼 지내볼까.


20251129. 1,092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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