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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인 Oct 06. 2021

퇴사하기 좋은 날 1

패배감 없는 퇴사를 하자. 무턱대고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답이 아니다.


30대 초반, 과장 2년 차쯤 되던 무렵이었다.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급한 결정이었지만 뒤돌아볼 여지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나의 최선이자, 한계였다. 사람들은 나의 결정에 크게 놀랐다. 불평불만을 자주 늘어놓는 성격도 아니었고, 얼굴에 잘 드러나지도 않았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대리님, 나 관둬요.”

  “네?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요. 말하면 다들 불편해할까 봐.”

  “말도 안 돼요. 무슨 일 있어요?”     

  그 질문에 나는 좋은 자리가 있어서 이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는 말을 아꼈다. 퇴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동료들은 자세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별로 친하지 않은 동료들은 내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움직인다거나, 인내심이 부족해 그만두는 것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퇴사 날까지 묵묵히 할 일을 했다. 하던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유종의 미’. 오직 그 단어를 떠올리면서. 그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퇴사하기 좋은 날


  퇴사하던 그날은 날씨가 참 화창했다. 시원섭섭한 작별의 순간만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 작별인사를 하러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예약한 택시가 왔고 개인 물품을 차에 싣는 동안 작별의 인사가 오갔다.


 “날씨 참 좋다. 퇴사하기 좋은 날이네.”

 “아. 너무 아쉽다. 우리 이제 못 보는 거야?”

 “나 이제 백수잖아요. 전 시간 많으니까 언제든 연락해요. 우리끼리 따로 뒤풀이해요.”

 “그래요. 연락할게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나와줘서 고마워요. 다들 잘 지내고, 아프지 말고요. 연락할게요!”     

 

사람들과 한 명씩 악수하고 택시를 탔다. 느긋한 택시기사를 만난 덕에 조금씩, 천천히 회사와 멀어지고 있었다. 택시는 나른한 한낮의 열기를 뚫고 미끄러지듯 달렸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봄날의 포근한 바람이 수시로 얼굴을 간지럽혔다.


 “집으로 가시는 건가요?.” 60대가량의 택시기사가 점잖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네. 방금 퇴사했거든요. 고맙게도 동료들이 도로까지 배웅 나와줬네요.”

 “분위기상 그런 것 같았어요. 손님이 좋은 동료였다는 뜻이겠죠.” 그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솜씨가 있었다.

 “아…. 그랬으면 좋겠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왜 그만뒀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많이 힘들었어요. 온몸이 병들고 공황장애가 올 만큼요.”

 “잘 나오셨어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죠. 제가 손님보다 조금 먼저 살아본 바로는…. 몸과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더군요.”

  “얼른 낫고 새 출발하세요. 다 괜찮아질 겁니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건강하세요.”

다 괜찮아질 거라는 그의 마지막 말. 조심스럽고도 섬세한 그의 위로에서 뭉근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어딘가가 건드려진 느낌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회사에서 가져온 짐을 집에 내려놓는 순간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이제 끝났다’라는 안도감인 동시에 끝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패배감이었다.


패배감


당시 내가 느꼈던 패배감이란 이런 이유에서였다.      


1. 무엇이 나를 ‘한계’에 도달하게 했는지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다.

2.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기에 차후의 계획을 생각하지 못했다.

3.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4.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5. 이 모든 이유로 두렵고, 막막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4번과 5번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들어간 회사였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서 선택한 회사였는데 어느 순간 회사를 다니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었다. 내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내가 나를  모르는 것인지 모든 게 혼란스럽고 막막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퇴사의 이유가  자신의 적성의 문제만은 아닌  같았다.


우리는 퇴사 전에 세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없이 무작정 버티기만 하면 결국 지쳐서 나와버리게 된다. 회사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내가 회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이것저것 따져봤을 때, 우리가 퇴사를 고려해야 할 회사는 이런 곳이다.


-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내 선택에 끊임없는 회의감을 느끼게 하는 회사

- 결정권이 거의 없고 부속품이나 허수아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회사

-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해야 하는 회사

-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나 보상이 없이 의무와 책임만 강요하는 회사

- 사람에 대한 기본 매너나 배려가 없어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회사

- 사람보다 일이나 돈이 먼저인 회사


  퇴사하든 계속 다니기로 했든 추후에 후회가 없으려면 스스로 인지한 문제를 개선할 노력은 필요하다. 우선은 업무, 직장 환경, 인간관계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봐야 한다. 그래야 패배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그 과정에서 퇴사 사유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것 역시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하지만 스스로 한계선은 설정해주는 게 좋다. 3개월이든 6개월이든 기한을 정하고, 버티더라도 딱 그때까지만 노력하는 거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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