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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인 Jun 11. 2021

무기력의 시작

번아웃의 서막

우리가 제때 에너지를 충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회사에서 정한 데드라인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중간에 치고 들어온 다른 일 때문에. 우리는 쉼을 가지기가 너무도 힘든 환경에 있다. 나 역시 그랬다. 회사에서 고군분투하고 집에 오면 일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술을 한두 잔 마신 후에야 술기운으로 잠이 들곤 했다. 아침은 언제나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겨우 출근하면 잔뜩 쌓여 있는 일들이 나를 반겼다. 지난한 프로젝트는 매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뇌게 했다.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면 그때는 정말 정신력으로 버텼다.

      

  과정이 힘들어도 보람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억지스러운 결과물은 보람을 건네주지 못했다. 결과물은 쏟은 노력에 비해 아쉬움이 컸다. 안간힘을 쓰며 함께 애썼던 사람들은 역시 많이 지쳐 있었다. 그들은 겨우 끝낸 프로젝트를 ‘인생에서 가장 힘든 프로젝트'였다고 토로했다.


어쨌든 끝났으니 사나흘 정도 휴가를 낼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막상 쉬게 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종일 잠을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쉬면 쉴수록 기운이 없고 어딘지 모르게 계속 쳐지는 기분이었다.

‘아. 몸이 왜 이러지. 이 기분이 대체 뭐지?’ 가만히 누워 생각만 하다 휴가가 끝났다.     

회사에 복귀하니 선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나를 반겼다.


 “쉬니까 어때? 좀 살만해?”

 “아니요. 쉬어도 이상하게 쉰 것 같지가 않네요.”

 “에이, 너무 열심히 논 거 아니야?”

 “진짜 사흘 동안 누워만 있었는데도 그래요.”

 “그래? 어디 아픈 건 아니고?”

 “네. 열은 없는데. 그냥 몸살같이 온몸이 무겁고 피곤해요.”    

 

  휴가 이후 첫 출근. 출근하자마자 새로운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갈망해왔지만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머리가 멍하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불현듯 깨달았다. 휴가 때 느낀 기분은 ‘공허함’이었다. 어딘지 텅 빈 듯한 기분. 텅 비었지만 그 공간에 아무것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뭔가를 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에너지가 없으니 새로운 일을 추진하기 위한 마음의 동력이 만들어질 리 없었다.     

 그런 내 상태와는 무관하게 회사는 변함없이 돌아갔다.


할 일은 넘쳤고 사람은 언제나 부족했다.


 “차주부터 A 프로젝트 착수야. 김 과장이 맡아. 잘할 수 있지?”

 “어…. 그게… 저는 그 프로젝트는 자신이….”

 “자기답지 않게 왜 그래? 이거 자기가 해야 돼! 할 사람이 지금 자기밖에 없어.”


답은 정해져 있었고, 팀장님의 말은 거역할 수가 없었다. 할 일은 넘쳤고 사람은 언제나 부족했다. 상황은 이해가 갔으나 나의 직관은 ‘하고 싶지 않아’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일이 하기 싫었던 적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몸은 수명이 다한 충전용 배터리가 된 듯했다. 매일 아침만 되면 턱이 빠질 듯 하품을 해댔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현기증이 났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 앞에 도착하면 근처 카페부터 찾아갔다. “아메리카노 샷 추가요.” 나는 금방이라도 방전될 것 같은 배터리를 카페에서 충전하려는 사람처럼 커피에 집착했다. 내게 카페인이 없는 아침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회의가 급해 커피를 사지 못한 날에는 사내 휴게실에서 급히 커피를 챙겨 회의에 들어갔다.  

    

  번아웃은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갔다. 동료들은 점점 예민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팀뿐 아니라 사내에 상주 중인 파견직, 계약직 사원 등 너나 할 것 없었다. 프로젝트 상황이 안 좋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힘드니 빈틈을 내줄 여유가 없었다. 불편한 기류 속에 날 선 감정들이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비켜 갔다. 누군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까칠한 말로 대갚음하거나, 쉽게 마음이 상했다. 그저 속으로 화를 삭이거나 말을 아낄 뿐이었다. 화기애애하던 사무실 분위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      


 “과장님, 제가 만든 게 그렇게 쓰레기인가요?”


  한 번은 후배가 잠시 옥상에서 보자고 하더니 대뜸 이렇게 물었다. 입사한지 한 달이 조금 넘은 남자 사원이었다.


 “네? 무슨 말이죠?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요.” 대뜸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물었더니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 계속 한숨을 쉬시길래요. 제가 그렇게 못했나요? 못했으면 그냥 대놓고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경험이 부족해서 혹시나 폐를 끼칠까 봐…. 일이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아요.”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실력 부족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행동 때문에 그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지, 그가 이미 스트레스받고 있어서 내 행동이 거슬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씨가 한 것 나쁘지 않아요. 솔직히 다른 일 하느라 아직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언뜻 보기에 특별히 못 하거나 그런 것 같진 않았어요. 한숨은… 그냥 요즘 좀 피곤해서 그래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후배를 토닥이고 내려왔지만 내 한숨 소리가 누군가를 그토록 스트레스받게 했다는 사실이 서글퍼졌다.  


  무기력과 피로감을 계속 둘 순 없었다. 전과 다른 열정, 부족한 체력은 스스로 더 무력하게 했다. 왠지 모를 두려운 마음이 들 때면 운동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공부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다시 일만 하게 되었다. 황금연휴 동안 국내나 해외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휴가라는 단기적인 보상은 ‘직장생활’이라는 장기적인 마라톤을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휴가 후유증도 상당했다. 회사로 돌아오면 시차 적응이 안 된 상태로 그동안 밀려있던 일들을 처리하기 바빴다.


‘왜 이렇게 계속 무기력하지?’

시간이 지나 이것이 바로 ‘번아웃', 소진 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번아웃으로 겪게 되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며칠 쉬어도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고, 쉬더라도 업무를 다시 시작하면 곧 소진된다

 회사 업무에 부담을 느낀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다

 전에는 잘 해냈던 일들이 지금은 자신이 없어졌다. 과거에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너무 힘들다는 생각에 퇴사를 고려중이다

 집중력이 자주 떨어지고,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거의 무표정한 얼굴을 하거나 우울감, 불안감, 공황 발작 등의 증세가 있다     


몸과 마음이 소진된 상태에서는 일이든 인간관계든 열과 성의를 다하기 어렵다. 피로가 장기화되어 번아웃이 의심스럽다면 생각해 보자. 어느 순간 매사 시니컬하고 냉담해졌다면 의심해 봐야한다. 혹은 동료들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면? 회사에 지친 사람들이 많으면 서로 좋은 피드백은 기대하기 힘들다. 사소한 것으로 날이 서다보니 감정 소모로 번아웃이 심해질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나도, 동료들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번아웃임에도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내게 이것은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었다.


번아웃의 해결책을 알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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