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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likehuh Jul 26. 2021

완벽한 사랑의 형태

평생의 동반자를 찾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이란,  사람의 관계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형태를 지닌 ' 이름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 표현해주는 단어라고   있다.(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후술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완벽한 사랑이라 하면 어떠한 형태를 떠올릴 때가 많다. 나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외모, 풍족하게   있는 재력, 기막힌 농담들과 편안한 미소까지.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완벽한 사랑' 꿈꾸고 그것과 현실을 비교하며 좌절하거나, 타협하거나, 만족하며 사는 듯하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의례 내가 좋아하는 외모, 공통된 취미, 공유할 수 있는 가치관들을 따져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요즘 느끼는 건, 그렇게 완벽한 사랑 찾기에 집중하는 것이 접시를 들고 근처 강가에 나가서 있을지도 모르는 사금을 캐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물론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중 내가 원하는 완벽한 사랑(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금을 찾기 위해 들고 있는 그릇(시간)의 크기는 넓은 땅에 비해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언젠간 내 그릇 위에 금덩어리가 굴러들어 오겠지' 하며 기다리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 사금 찾기보다 완벽한 사랑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점은, 상대방의 그릇에도 내가 금덩어리로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거야 말로 하늘이 내린 사랑, 천생연분이 아닐까. (아마 그런 사랑을 찾은 사람들은 이런 글을 읽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완벽한 사랑 찾기를 포기하고 현실에 만족하며, 참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다행히 그러지 않아도 된다. 서두에 내가 사랑을 '형태' 보다는 '상황'이라 말한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사랑이 어떤 완벽한 순간이나 형태보다는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지속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현재 모습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내일, 그 이후에도 사랑할 것이라는 뜻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가는 길에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고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함께 이를 해결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완벽한 사랑을 찾는 이유는 결국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고 싶기 때문인데, 함께 가는 여정 중에 누군가 하차해버린다면 이는 실패한 사랑이 아닌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 사람과는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담보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찾는 사랑이란 이러한 믿음이 서로에게 찾아온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나도 아직까지는 이 '해결의 방법'에 대해 완벽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면 분명 다른 점이 존재할 텐데,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까지는 나도 알겠다. 그 결과물로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나온다는 것도 알겠다. 그럼 서로 다른 점을 상대방에게 맞춰주면서(거슬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한 방법일까? 아니면 각자의 다름을 인정했으니 서로 그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터치하지 않는(내가 상대를 존중하는) 배려가 더 지속 가능한 방법일까. 두 가지 방법을 혼용한다면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좋은 방법을 찾는다면 돌아와 추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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