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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브 MAROB Nov 19. 2020

딱 2년만 딩크(DINK)로 살겠습니다

2년 동안은 무조건 신혼


결혼을 한지 어느덧 3년 차가 되었다.

2년이 조금 넘는 결혼 생활은 내가 '한 남자의 여자'이자 '아내'로, 그리고 또 '며느리'로써 나를 둘러싼 달라진 정의와 새로운 역할을 차근히 따라갈 수 있는 시간이자, 부부로서의 삶이 어른판 소꿉놀이가 아닌 평범한 일상이 되어가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변화에 적응해가는 시간이었다.


여자 평균 초혼 나이가 30.4세(2019년 기준)라고 하니 나는 그다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정한 나이에 결혼을 한 셈이지만, 당시 나와 나이가 비슷한 주변 친구나 동창들 중에 결혼을 한 사람들이 많이 없어 상대적으로 빨리 결혼한 애처럼 인식되었고, 남편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혼을 빨리 했으니 남들보다 신혼을 더 많이 즐겨야지, 라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결혼 초부터 '우리는 무조건 신혼 2년을 즐길 거예요!'를 선언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명백히 우리는 영원한 DINK족(아이를 낳지 않기를 선택한 삶의 방식)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입장은 '신혼 2년을 고수할 겁니다.'였기에 양가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의 결정에 확신이 있었고 그 덕분에 첫 2년 동안 어떤 방해도 없이 둘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살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삶?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아이가 생길 것이고, 언젠가는 나도 육아로 정신없는 삶을 살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닌 '언젠가'였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언젠가는 한 번쯤 맞닥뜨리게 될 문제였지만, 당장에 현실로 벌어지게 하고 싶은 주제는 분명 아니었다.


그렇게 보장된 자발적 2년간의 신혼은 달콤한 자유로움으로 둘러싼 방종의 시간이 되어갔다. 없어진 통금,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술, 어디에 가도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한데 모여 지난 연애 시절의 구속을 보상해주는 듯했다. 특히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술을 언제든, 몇 시까지고 마실 수 있다는 해방감은 맥주의 시원함 만큼이나 짜릿하고 통쾌했다. 둘의 시간에 익숙해지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이유가 점점 늘어났다. 30년 만에 느낀 자유를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어린아이 같은 이유에서부터, 주변 육아를 하는 친구나 지인을 통해 듣게 되는 육아의 무시무시함, 그리고 왠지 세상이 시키는 대로 따박따박 살고 싶지 않다는 왠지 모를 반항심까지 모든 것이 지금 나의 아이 없는 삶을 응원하고 있었다.


여기에 성격상 걱정을 달고 다니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거창한 이유가 굳이 아니더라도 자잘 자잘한 걱정들만으로도 아이 있는 삶을 회피하기에는 충분했다. '애를 낳으면 누가 키워 주지? 아줌마? 친정엄마?', '아줌마 쓰면 몇 백만 원 든다는데 그 돈으로 차라리 내가 육아하는 게 나은가?', '출퇴근하면 애랑 하루에 12시간은 기본 떨어져 있는데 아이 정서에 안 좋은 거 아닐까?', '아기 낳고 뚱뚱해지면 어떡하지?', '임신하면 술 못는데 1년 동안 못 먹을 수 있을까?'등 아기도 없는 내가 아기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들을 사서 하다 보면 자연스레 "에라, 모르겠다! 카르페디엠! 지금을 즐겨!"로 회귀하곤 했던 것이다.


'2년 동안 신혼'이라는 선언으로 언젠가는 닥칠 부모로서의 책임으로부터, 주변의 궁금증으로부터, 가족의 기대로부터 면죄부를 받긴 했지만 결혼 후 1년이 지나가자 마음이 조금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삶이 좋았고 여기에 만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초조함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초조함은 특히 나보다 늦게 결혼한 사람에게 허니문 베이비가 생길 때나(심지어 두 명이!),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 먼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육아를 하고 있는 동기의 와이프 얘기를 들을 때면 부모의 삶에 대해 막연하게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면 나의 '2년 동안 신혼'은 마치 치기 어린 어깃장같이 느껴지면서, 내 나이가 이렇게 놀기만 할 나이가 아닌데 너무 내가 쉽게 생각했나, 싶다가도 '아냐,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라는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곤 했다.


"준비돼서 부모가 되는 사람이 어딨냐. 낳고 나면 준비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부모가 되는 거지!"


회사 친한 동기와 커피를 마시며 아이를 낳을 준비가 도저히 되지 않아서 못 낳겠다, 는 나의 말에 이제 막 돌을 지난 아이를 키우는 동기가 이렇게 대꾸했다. 맞는 말이었다. 너무나도 뼈를 때리는 팩트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긴, 학생이 될 때도, 회사원이 될 때도, 결혼해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될 때도, 만만의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과 장/단점을 비교해서 따져보고 선택하는 것이 삶이라면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 거니와, 나는 결코 이 모든 선택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


물론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는 단순히 학생이 되고, 회사원이 되는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문제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여기에는 내가 감히 상상도 못 할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 시간적 희생과 노력이 들어갈 테니 말이다. 아이가 없는 삶을 지향하는 부부 있는 것도 그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기에 이 모든 것을 퉁쳐서 그냥 '될 대로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다 보면 다 돼.'라고 일단락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책임한 생각일 수도,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나 또한 이러한 말들과 함께 결혼하면 아이를 당연히 낳아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똑같이 느낄 때가 있으니깐. 단지 그저 나는 다른 이유를 차치하고 우리 부부의 삶에 아이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고, 그 삶을 궁극적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 분명한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머릿속으로만 재고 따지다가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주구장창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이 되는 것이 싫었을 뿐이었다.


2년의 시간은 쏜살같았다. 1년은 너무 짧고 3년은 너무 긴 것 같아 2년으로 정했는데. 1년보다는 2년이 좀 더 안정적이고 정감 있어서 정했는데. 결국에 이 2년에도 끝이 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래서 충분히 즐겼냐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그런것 같기도?'다. 노는 것에는, 즐기는 것에는 역시 결코 '완벽하게 충분한' 지점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눈 깜짝 사이에 계절이 10번이나 지나간 지금,  너무나 우습게도 '2년 전 그때 아이를 가졌더라면 지금쯤 놀 수 있을 텐데...'라는 나 스스로도 참으로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많은 엄마들이, 여자들이, 또 부모들이 나의 이 생각을 안다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이기적인 모습 또한 솔직한 나의 모습인 것을 어쩌겠는가. 어쩌면, 오히려, 의외로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부부들이, 그리고 나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더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스스로를 토닥거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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