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로브 MAROB Nov 22. 2020

나의 '좋은 소식'을 기대하는 사람들

아이를 기대하는 이유와 아이를 갖는 명분


'앞으로 2년간 아이 없이 둘만의 신혼을 즐기겠다'는 앞선 나의 당찬 포부가 무색하게도 지난 2년간 꾸준하게 들었던 말들이 있다.


"다음번엔 좋은 소식 좀 들려다오"


"오랜만! 좋은 소식 있는 거 아니야~?"


"좋은 소식 생기면 알려주고."


여기서의 '좋은 소식'이란 승진일까, 이직일까, 아니면 영혼을 끌어모아 마련한다는 내 집 장만일까? 땡! 틀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아이 소식'이다. (음, 생각해보니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의 "언제 국수 먹게 해 줄 거야?" 버전과  비슷한 것 같기도) 좋은 소식을 묻는 질문은 결혼 한 이후 '잘 지내지?' 다음으로 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오는 보통의 인사말이 되었 문제는 대부분 별  없이 묻는 안부 같은 인사에 내가 '적당히' 잘 대답할 수 있기를 원하면서 가끔 쓸데없는 골치가 아파지곤 했다는 것이다.


대체로 자주 보거나 편한 사이에서는 "아, 무슨 좋은 소식이야~ 없어!"하고 넘어갔. 애매하게 친분이 있는 분이 물어땐? 대체로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체하면 끝. 역시 가장 고난도 상대는 바로 시 할머님었다. 아흔을 넘긴 시 할머님께는 도저히  할머님께서 '이해'하실 적당한 답을 찾지 못 나머지 미예상 답변을 머릿속에 준비할 때도 있었지만, 막상 미소와 함께 지긋한 눈빛으로 여쭤보시는 상황이 펼쳐질 때 예상 답변이고 뭐고 "하하, 다음번에는 들려드릴게요."라며 매번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대답을 버무렸다. 마치 '다음에 꼭 한번 밥 먹자.'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양가 부모님께서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아이 얘기로 조금의 강압도 주지 않으셨다는 것인데, 리가 너무도 당차고 뻔뻔하게도 우리의 계획을 선포해버린 것도 영향이 있었지만, 아마 '요즘 애들은 그런 걸로 눈치 주고 그러면 싫어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으고 조심하신 부분도 있으실 듯싶다. 제는 점점 부모님이 아들 눈치, 며느리 눈치 보는 세상이 돼가는 것도 한몫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상대방이 별 뜻 없이 인사치레로 한 말이든, 호기심에 찬 눈빛과 함께 진정 답을 원하는 질문이든 간에 '좋은 소식'을 찾는 말은, 때로 '결혼을 했으면 응당 바로 아이 소식이 들려야지.'라는 간접적인 압박으로 느껴 때도 있긴 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이 놈의 대한민국은 변하질 않네!'라고 외치기보다는 내 정신 건강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렛 잇 고!'를 외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나를, 나의 생각을, 우리의 계획을  상대가 존중해주는 에서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우리 신혼 2년 시간을 의외로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건 남편의 경험이다. 오랜만에 만나 애가 생겼는지 묻는 남편의 오랜 친구의 물음에 남편이 "아!"이라고 대답하자, 친구가 "너 문제 있는 거 아니냐ㅋㅋ?"라고 렸다는 것. 남편의 친구들 중 상대적으로 빨리 결혼해 결혼 1년 차에 아이를 낳고 둘째까지 낳게 된 이 친구에게 2년 동안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가 조금은 어색하고 의심(?)스러워 보였나 보다. 아이에 대한 친구와 남편의 대화는 남편이 극구 "나 아니라고!"를 외치며 서로를 놀리는 것으로 싱겁게 종결 났다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남자들 사이에 이런 농담도 한다며 별 뜻 없이 말해주었지만 얘기를 들은 내 마음 한편엔 '아이 없이 보내는  다사람들에게 아이를 '안' 갖는 것이 아니라 '' 갖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부모님 세대에는 아이 워낙 귀했기에 지금 우리와 같이 아이를 '계획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우리와 같은 또래의 사조차 '노 키즈' '부부 사이에 문제' 은연중 결부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 무엇보다 진심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많은 난임 부부들에게는 무심코 한 이런 농담이 부부의 내밀한 부분에 닿아 생채기를 내버릴 텐데 말이다.


결혼하고 한동안 아이가 없는 상태에 대해 우리의 계획을 모르는 이들은 그 내막을 궁금해했다. 그들은 때로는 위의 친구처럼 직설적으로 묻기도 했고, 한편으로 은근하게 조언하기도 했으며, 또 끊임없이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궁금해하는 분들에게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2년 동안은 자발적 DINK'라는 사실을 숨길만큼 이것이 대단한 결심도, 엄청난 사생활도 아니라 생각했기에 솔직하게 말했고, 오히려 공감해주며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조언을 받을 때면 또 한 명의 지지자가 생긴 것 같아서 든든했다.


2년의 신혼 시간을 보내면서 내 나름대로 아이에 대한 생각을 마음 한편에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낳는 이유, 아이가 있으면 좋은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됐는데 역시 상상만으로는 아직 한계가 있었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 엄마한테 물어보면 하나같이 "아이고, 애가 얼마나 이쁜데. 애 키우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이뻐. 자라는 것을 보는 게 행복이야."라고들 하는데 난 아무리 내 아이를 머릿속으로 열심히 그려 아름다운 상황에 대입해봐도 크게 와 닿지 않는걸. 강아지도 키워보지 못한 나에게 아이의 존재는 아직  너무나도 멀고, 어렵고, 난해한 문제임에 틀림없었다.


"아, 육아 휴직 가고 싶다!"

"아 진짜... 나도 휴직하고 싶어서 애 낳고 싶다니깐!"


여자들이 모여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얘기다. 회사 일이고 뭐고 만사에 지쳐 다 그만두고 싶을 때 넋두리처럼 육아 휴직 얘기를 시작하면 너도 나도 동참하게 된달까. 일반 회사원들이 장기로 쉴 수 있는 유일한 휴직이 결국 육아를 위한 휴직이라니 이 워커홀릭 같은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아이를 낳아서라도 일로부터 쉬고 싶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직장에서 지쳐갈 때면 막연히 아이를 낳는 것도 좋겠,  생각을 다. 어쩌면 '내 아이는 이쁘다'는 뻔한 얘기보다 이런 실제적인 나의 현실이야말로 내가 생각한, 내 가슴 가장 와 닿는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는 일이 숭고한 일인 것처럼 아이를 낳는 이유 역시 숭고해야만, 윤리적으로 양심적으로 마땅한 일일 것 같지만 내 마음이 내 생각이 어디 내 맘대로 되는가. 때로는 이런 어이없는 그리고 철없는 이유로 아이 낳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도 있겠고, 나와 남편 혹은 나와 아내의 모습을 쏙 닮은 2세가 보고 싶은 마음에 낳는 경우도 있을 테고, 아니면 어느 친구의 얘기처럼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심심해서 생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낳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아이를 낳는 이유야말로 분명하면서도 정확하지 않고, 거창할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기면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별 것 아닌 것들이 아닐까.  


결혼한 친구들과 얘기하다 자연스레 2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서로의 계획을 묻고 들으며 나도 대답했다.


"이제 때가 돼가는 것 같아.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 아마도 아야 알 것 같은데. 단은 음... 육아휴직?"



매거진의 이전글 딱 2년만 딩크(DINK)로 살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