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대하여(2)

진실

1. 

  진실은 숨지 않는다. 우리가 눈을 감았을 뿐.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진실은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정의가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만을 부르짖는 자들은 진실되지 못하다. 정의는 자주 욕망의 도구가 되어 칼춤을 춘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이유도,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이유도, 그들의 말이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은 만물 실체를 드러내보이지만, 그것과 직접 마주하면 실명하거나 타 죽게 된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업이다. 이카루스는 태양에 닿고자 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의 추락에 혀를 차며 고개를 숙이고 이삭을 줍는다. 그들은 지상의 위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땅에서 나고 자라며 땅으로 먹을 것과 쉴 곳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태양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두 눈을 껌뻑인다.

 

   나는 지하인들을 본적이 있다. 그들은 원래 지상인이었으나, 태양을 모독한 죄로 눈과 귀를 잃고 식탐하는 입만을 갖게 되었다. 그들을 쉬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쉬지 않고 삼킨다. 그들은 땅마저도 저버리고, 텅 빈 뱃속으로 숨는다. 우리는 굶지 않는다고 외치며 입을 뻥긋거린다. 

   노예와 아귀는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치 않다. 아니 그들에게 진실은 두려운 것이다. 진실은 메두사의 머리처럼 아무도 본 적 없지만 파멸로 이끄리라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보는 자들의 증거로, 보지 않는 믿음은 불신을 품는다. 노예와 아귀는 보지 못하기에 불신자며, 불신자가 사는 곳은 지옥이다. 그들이 지옥에 사는 이유는 그들이 진실 보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헐뜯고 조롱하는 이들은 진실이 어디에 있냐고 되묻는다. 진실은 그들의 정수리 위에서 늘 비추고 있지만, 그들은 고개를 들어 정오를 볼 용기가 없다. 몇몇 용기 있는 자들만이 정오의 태양을 바라볼 수 있다. 진실은 여기에 있다. 

(시나리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