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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븐 Nov 20. 2022

무례함에 대해서

[인생의 중간즘] 업(業) 속의 무례함을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최근 나뿐만 아니라 회사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거래처 담당자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서 소문이 들리더니 갑자기 퇴사한 것으로 보인다.


“마음고생 심했는데, 훌훌 털어버려. 그때 정말 힘들었지.

그래도 이런 것을 우리가 보게 되다니…. 정의가 아직 살아 있나 봐”


소식을 전한 동료는 약간 신나는 말투다.

이 내용을 전해 받는 나도 마음속에 깊은 쾌감이 우러나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소식이 금방 무덤덤해졌다. 신기한 현상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이 부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너무 신나서, 너무 고소해서 당시 괴로움을 겪었던 인원들을 불러 모아 축하 파티를 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차분해지는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돌아보니 이 소식을 전해 받은 순간까지 나는 그 거래처 담당자를 잊고 살았다.

일상 속에서 그 담당자를 기억도 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그 조직에서 어떠한 영향을 주고 사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마 의도적으로 그러한 무관심의 상태를 위한 노력 속의 일환이지 않을까 싶다.


종종 일하면서 고객과의 어려움에 대한 어젠다로

직원들이나 지인들의 질문을 받으면 당연히 그 거래처 담당자의 만행이 가장 첫 번째로 떠올랐다.

이미 지난 일이고 당시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며,

잊기 위한 노력 때문인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간혹 업무 때문에 그 담당자를 다른 인력들과 함께 마주하는 일이 있었긴 했지만

요구되는 업무 복잡도는 낮은 편이라 최소한의 미팅과 컨택으로 끝났다.




큰 기업에서 속한 사람들 중에 간혹 자신의 역량과 본연의 캐릭터를 회사와 일치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 시간 일해 보니, 이런 사람들은 특징이 명확하다.

대화가 일방적이고, 잘못된 가이드에 전혀 인정을 하지 않는다.

또한 업무 R&R외에 별도로 부탁하는 것이 익숙한 대화법으로 무장해 있다.

문제가 발행하면 모든 문제의 책임을 파트너에게 돌린다.

일정에 없는 과도한 데드라인으로 보고서나 분석 내용을 요청한다.

일을 일 자체로만 수행하면 그만인데,

불안, 불만, 화, 성냄 등의 감정이 오가고, 역할과 책임을 넘어선 요구가 끼어들게 된다.

의도하지 않던, 의도하였던 그러한 무례한 감정과 요구들은

파트너들에게 무례함을 요구하는 조직으로 보이게 만들고, 대외적으로 잘 구축해 놓은 기업 브랜드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일하는 방식을 선배에게서 배웠는지도 모른다.

또는 더 높은 성과를 얻기 위해 본인만의 노하우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 사람만의 인성 문제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앞으로도 무례한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만나기 싫은 이 무례한 사람들을 왜 지속 발생하는 걸까.

그리고 계속 만날 텐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무례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바뀌고 있다.

요즘처럼 SNS가 발달되고 더욱 비밀이 없어지는 세상 속에서

무례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여러 정황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퇴사한 그 거래처 담당자는 자신이 행한 무례함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불합리한 것들, 공정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들로

변화를 희망하는 세대는 노출된 무례함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무례함을 겪는 그 순간엔 누구나 화가 치밀고,

심리적으로 그 사람을 피하고 싶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거리감이 증폭한다.

그동안 그런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이 일의 태도이자 역량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지혜롭게 노출되고, 공정하게 풀려는 시선이 많아졌다고 본다.


얼마 전에 우연히 어떤 저자의 요약된 카드를 보았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무례함과 불합리한 사안에 대해서

복수심을 가진 심리적 상태가 얼마나 독이 되는지 설명한 내용이었다.

통쾌하게 불합리한 것을 조직적으로 드러내거나, 한방 먹이는 고발이나 대응에 대한 노하우,

의사소통법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 내용이 의도하는 바는 더 나은 일상을 영위하고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지속하려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의식을 아예 배제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역할 수행에 충실하다가 얻어지는 비매너와 무례함 그리고 불합리함은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전인격적인 상황이 아닌 비즈니스 케이스 일뿐이다라고

정리하고 아예 마음에서 무시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 내용이 다소 느리고, 패배감을 인정하는 모습을 비출 수는 있겠지만

매우 지혜로운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일상을 사는 것은 나 자신이고,
그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나의 소중한 하루하루가 망가지지 않도록 나를 채워야 한다고 이해했다.

돌아보니 나도 그 퇴사한 거래처 담당자를 나의 삶에서 밀어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훈련을 노력했다.

그래서 다음에 만난 다른 무례함도 조금은 쉽게 배제한 것 같다.


또 다른 무례함이 온다면, 다른 방식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무례함이 나에게 들어오지 못하는 방식으로 나를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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