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힘들다는 육가공 공장에 대하여
아마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꽃이라고 하면 꽃이고, 가장 기피의 대상이기도 한 곳이 육가공 공장일 것이다.
호주에 와서 10개월 간 농장 생활을 하고 지금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호주 노예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정말 힘든 일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여기 온지는 2달 정도 됐는데, Victoria Moe라는 도시에 있는 작은 공장이다.
작은 공장인데도 꾸준히 일이 있고, 수출이 좀 잘 나가는 편이라 일이 끊임이 없다.
멜버른 시티에서 피로를 풀며 쉬고 있을 때 웹상에서 좋은 일자리를 보고 지원을 했다.
약 1시간 남짓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 중국어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현장 매니저로 발탁이 됐다.
당장 출발할 수는 없고, 약 2달 정도 기간이 생겨서 그 안에 출퇴근할 때 사용할 자동차도 사고 영어 중국어
공부도 좀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을 구했다는 기쁨도 잠시 코로나 상황이 터지면서 변동이 좀 생겼고, 그로 인해 매니저에서 일반 워커로 되어
한동안은 계속 워커로써 일을 하게 됐다.
몇 백 불 정도의 수입에서는 차이가 생기겠지만, 지금 상황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공장에는 여러 파트가 있는데, 소를 도축하는 파트/ 도축한 소의 뼈를 발라내는 파트/ 지방을 트림하는 작업 등등 여러 가지 파트가 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아닌 바닥을 청소하는 플루 보이라는 작업을 맡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육가공공장의 제일 밑바닥 일이 아닌가 싶다. 무거운 고기 찌꺼기들을 나르다 보면
어느새 1000kg짜리 고기 담는 통을 두 번이나 채우게 된다.
농장에서 일반 톱으로 브런치도 잘라 봤고, 전기톱도 사용해가며 열심히 일한 나지만, 그 일에 비해서도 조금 힘든 일이 아닌가 싶다.
공장 워커들은 레벨 1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레벨이 올라 8까지 올라가는 걸로 보이는데,
실질적으로 1부터 6까지가 가능한 레벨인 듯하다.
일을 하다 보니 약간 욕심이 나서 어떻게 하면 일을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열심히 일을 좀 했더니,
전에 했던 다른 플루 보이들보다 매우 빠르고 스마트하게 일을 한다면서 1주일이 되자마자 레벨을 두 단계나 올려줬다. 다들 정말 빨리 올라간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 시급도 나에게는 좀 적은 거 같이 느껴진다.. 사람의 욕심이란..
다행히 유일하게 오버타임을 해야만 하는 파트라서 꾸준히 오버타임을 하는데 1주일에 6.5 시간이 오버타임으로 찍힌다. 결론적으로 하루 9시간 30분 ~ 10시간 정도 일을 하는 거라고 보면 될 거 같다.
무거운걸 많이 들고 엄청나게 바쁘게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몸이 굉장히 좋아지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즌이라 헬스장을 못 가니 가지 않아도 일상이 운동이다 보니 헬스장에 갈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다들 말도 안 걸어주고, 자기네들끼리만 친해 보였는데, 중간중간 호주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재미가 붙어 한 마디씩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부마'라는 친구는 엄청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큰데 매일 날 볼 때마다 "플루 보이~"하면서 날 부르는데 어찌나 목청이 큰지, 야한 농담을 자꾸 하는데.. 호주 애들 농담은 다 이런 식인가 싶다..

'크리스'라는 사람은 정말 인상 깊은 사람인데, 오며 가며 나에게 "하이 벤 ~" 하면서 인사해주는데,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 일도 정말 잘하는데 마치 슬라이서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다.
'핸드리'라는 친구는 솔로몬 아일랜드라는 곳에서 온 친군데, 나하고 마무리 작업을 매일 같이한다.
차가 없어서 올 때 나갈 때 택시를 타고 다녔다는데 택시비가 비싸서 그냥 꾸준히 집까지 데려다주고 있다.
일을 참 잘하고 밝고 열심히 하는 친구라 매우 마음에 들어서 공장 베스트 프렌드다 하하..
내 생각에 호주도 정말 한국과 많이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사회생활하면서 소위 "쇼잉"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는데,
호주 사회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잘 보이는 것" 슈퍼바이저에게 잘 보이는 게
결국 자기의 소득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퍼포먼스가 굉장히 중요한 거 같다.
아직 2달 정도밖에 안됐지만.. 정말 힘든 일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1달 정도가 지나고 나니 힘들일이라도 금방 적응이 되니 충분히 버틸만하다.
손목과 무릎과 허리가 좀 아프지만.. 충분히 참고 견뎌낼 정도의 아픔이다.
현재의 목표는 최대한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해서 한 단계 레벨을 올린 후 슬라이서 쪽으로 가서 고기를 트림하는
기술을 좀 배우고 싶다. 이 일만 계속할 수는 없다.
오며 가며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가는데 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보게 된다.
소를 죽일 때 소를 기절시킨 후 목을 잘라 도축한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나는 본 적이 없다.
듣기만 해도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주로 "소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꼭 동물을 잡아 죽여서 고기를 만들어 먹어야지만
좋은 식품인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Beyond meat"라는 기업이 있다. 며칠 전부터 스타벅스에 납품하고 있는 식품회사인데, 주로 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배양육을 판매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도록 하자.
빌 게이츠에게서 거액을 투자받은 기업으로 유명한데, 누가 투자를 했고, 어떤 회사던 간에
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건 곧 있으면 생물을 잡아 죽이지 않고도 신선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렇게 되면 소를 도축하는 도축업자들이나 소고기 공장은 다른 판로를 찾아야 될 것이다.
글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충분히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됐으면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미안하지만.. 소들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