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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

[한일부부 인생의 만찬] 치명적인 냄새의 유혹, "소곱창 구이"

결혼과 함께 자리 잡아 현재 살고 있는 동네는 오랫동안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받아 온 맛집들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나는 익숙해지기 위해 아내와 종종 동네를 산책하곤 했다. 산책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공원을 걷거나 하천변을 거닌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동네 한 바퀴를 하였다.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사람들이 늘 오고 가는 거리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느긋한 걸음으로 아내와 수다를 떨면서 걷고 있으면 불규칙한 간격으로 나를 자극하는 냄새들이 있었다. 치킨집 앞을 지날 때면 튀긴 닭의 고소한 냄새가 나를 자극했고,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만둣집 앞을 지날 때면 만두 익는 냄새가 코 끝을 자극했다.



식사를 해서 배가 부른 상태여도 내가 들이마시는 숨의 사이사이를 맛집들의 맛있는 음식 냄새가 비집고 들어오곤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코를 자극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소곱창이 익는 냄새였다. 언제나 동네의 소 곱창구이 집을 지나갈 때면 나는 본능적으로 걸음의 속도를 거의 정지 수준으로 낮추며, 곱창 익는 냄새를 음미했다.


곱창이 익는 냄새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마성의 냄새였다. 이 냄새는 절세 미녀 앞에서 흔들리는 군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냄새였다. 구운 고기, 특히 곱창을 구운 것은 잘 먹지 않았던 나였는데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는 곱창 익는 냄새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결국 나는 소 곱창구이의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본능이 이끄는 데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소 곱창구이가 주는 매력적인 냄새와 맛을 애써 거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곱창은 기름기가 많아 몸에 좋지 않고, 소의 부속물이라 가치가 떨어진다.' …, 내 안의 이런저런 생각의 틀을 거두어 버렸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니 내가 처음 소 곱창구이를 먹었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군대를 만기로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했던 그 시절, 친구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던 그날이었다. 우리는 왕십리 곱창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곱창이 익는 냄새를 진하게 접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될 눈앞의 여인보다도 나를 더욱 흥분시켰던 그 맛이 소 곱창구이의 맛이었다.



그때의 그 맛을 나는 수년의 시간 동안 잊고 살았다. 십 년도 더 되는 세월이었다. 나를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그 맛을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있었다. 세상이 하얘지고, 눈이 수없이 번뜩였던 그 맛, 주변의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것을 먹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던 그 매력적인 맛을 나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이제는 단골집이 된 동네의 소 곱창구이 집을 다니면서 어느 순간, 나는 예전에 느꼈던 왕십리에서의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하게 본능에 충실하며 먹었던 그때의 소 곱창구이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떠한 마음의 장벽도 없이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하며, 나의 오감(五感)이 만족되던 그때 그 순간의 기쁨으로 다시 행복해질 수 있었다. 먹는 행위가 주는 기쁨과 충만감으로 일상의 피로도, 하루의 근심도 날려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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