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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선물한 게장백반의 맛

[한일부부 인생의 만찬]

얼마 전, 나는 아내와 여수로 여행을 다녀왔다. 직장생활과 이사 등으로 한동안 바빴던 우리 부부는 한숨을 돌리는 차원에서 여수로 여름휴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기차가 주는 낭만 속에 삶은 계란도 까먹으며, 예전부터 아내와 꼭 같이 가보고 싶었던 그곳, 그렇게 우리는 여수로 떠났다. 


내가 처음 여수를 방문한 때는 2012년 여수 엑스포가 개최되던 시기였다. 재취업에 성공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첫 번째 여행지가 그곳이었다. 세계적인 행사가 개최되던 시기였던 만큼 엄청난 인파가 여수를 방문하고 있었다. 

더웠던 여름, 엑스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지만 여수는 관광명소 어디를 가든 넘치는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푹푹 찌는 더위와 넘치는 사람들은 여수 어디에서나 걸림돌이 되어 여행의 운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딱 한 번, 유일하게 게장백반을 먹을 때만큼은 달랐다.

여수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게장백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여수 봉산동 게장백반 골목으로 향했다. 역시 이곳도 게장백반을 취급하는 음식점 어디에서고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 부채질을 해주며, 그 대열에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얼마의 시간을 흘렀을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참을 기다리니 우리 가족도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점원의 안내를 받아 우리 가족이 자리를 잡은 곳은 홀의 한 측면 맨 구석에 있는 테이블이었다. 지금처럼 많은 손님이 없을 때라면 가장 천대받을 위치의 테이블이었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서 완전히 독립되어 있었다. 맨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은 메뉴를 주문 후 음식 세팅만 마치면 점원이 지나다니거나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아울러 수많은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음식점 안에서 식사를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면 서둘러 일어나기 바빴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었고, 게장백반을 먹는 그 순간에도 엄청난 인파와 전쟁을 치르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맨 구석 테이블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군중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 안락한 가운데 눈앞에 펼쳐진 여수의 게장백반을 "인생 게장백반"으로 삼을 수 있는 맛의 기쁨도 누리게 하였다. 

나는 바로 이 맛을 아내와 함께 느끼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게장백반의 맛을 아내가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나로 인해 간장게장의 맛을 배운 아내였기에 나의 "인생 게장백반"의 맛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온 아내가 간장게장을 맛본 것은 어쩌다가 한 번씩 먹었던 한정식에서 반찬으로 나온 것이었다. 한정식의 수많은 음식들 속에서 존재감이 빈약했던 간장게장의 맛은 아내에게 미비하게 느껴졌었다. 그 참맛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늘 궁금했었다. 한국의 간장게장 맛집을 직접 찾아가서 먹어보고 싶은 정도까지는 아닌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맛이 그것이었다. 


우리 부부가 즐겨가는 동네의 간장게장 맛집에서의 한상


그런 아내의 막연했던 궁금증은 바닷가 출신으로 해산물을 즐겨먹는 나와 결혼하면서 해소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을 여행하며 먹어본 살과 알이 꽉 찬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의 매력에 푹 빠진 이후,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간장게장 맛집을 찾고, 언제든 나와 편안하게 간장게장을 즐길 수 있는 단골집을 만든 사람이 아내였다.




우리 부부의 이번 여수 여행은 게장백반 맛집 투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박 3일의 여행 일정에서 우리 끼니의 시작과 끝을 게장백반과 함께 했으니 게장을 먹기 위해 여수에 왔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여수엑스포역에 내렸던 시간이 오후 3시 30분쯤이었다. 7월 후반의 여수는 6년 전, 내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보다도 더욱 무덥게 느껴졌다. 푹푹 찌는 더위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위해 달려간 곳이 6년 전, 그때의 게장백반 집이었다. 그곳은 변함없이 봉산동 게장 골목 그 자리에 있었다.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벤치가 마련된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저 시간만 흘렀을 뿐, 그곳은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긴 줄을 서며 기다리지 않았다. 한적한 음식점 내부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그것이 주는 평화로움은 이내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도록 하는 여유로움을 주었다. 나는 손을 뻗어 가리키며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 앉았던 자리를 아내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즐거웠던 그때를 설명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쓰인 기억의 페이지는 예전만큼의 감동을 담지는 못했다. 조기찌개가 게찌개로 ~, 백반의 상차림이 변한 것처럼 게장백반의 맛도 예전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수의 돌게가 가지는 척박함과 빈약함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6년 전, 그때를 추억하며 우리는 여수 게장백반 골목으로 달려갔다


엑스포 이후에도 여수는 변화가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상 케이블카가 생겼고, 여수를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들이 생겼다. 해가 질 무렵 그리고 해가 진 이후의 해상 케이블카 탑승은 짧지만 굵은 낭만을 선사했고,, 여행의 하루를 꼬박 바친 여수 낭만 버스투어는 다시 찾아도 낯설었던 여수라는 도시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점심, 우리 부부는 여수 토박이 택시 기사님이 추천해준 게장백반 맛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봉산동 게장백반 골목으로 향했다. 이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주말이라서 그런지 게장백반 골목에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역시나 우리가 가고자 했던 게장백반 집에도 손님들이 북적였지만 줄을 서지는 않고, 바로 음식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집의 게장은 간이 세지 않아 우리가 게장을 즐기기에 딱 좋았다
추억의 조기찌개를 여기서 먹게 될 줄이야! 게장만큼이나 찌개도 맛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음식점 내의 분위기가 활기가 넘쳤다. 가족 단위로 여행을 온 손님도 많았고, 단체 손님도 보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맨손으로 게장을 잡고 뜯어먹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밥상의 한쪽에 가득 쌓여가는 게 껍데기는 마치 여수 돌게의 빈약한 살점을 싹싹 발라 맛있게 먹는 그들의 성의와 노력의 결과물 같았다.    
 
우리 부부도 게장백반 정식을 2인분 주문했고, 즐거웠던 그 순간에 동참하였다. 이번에는 공깃밥까지 추가하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웠던 조기찌개의 맛을 이 집에서 느끼게 될 줄을 몰랐지만 과거의 추억도 여기서는 더 진하게 다가왔다. 

"아~ 행복하다!" 

아내와 나는 식사를 하는 동안, 줄곧 이 말을 내뱉었다. 음식이 주는 행복감이 극에 달하자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당신이 고마웠다. 아내는 내가 추억하는 그때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때를 기억하며 자신과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자 이곳을 다시 찾은 내가 고마웠고, 나는 그런 나와 함께 하는 아내가 고마웠다. 온 마음과 정신으로 이 순간에 나와 함께하려는 아내가 나는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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