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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누키 우동, 고향의 맛을 느끼다

[한일부부 인생의 만찬]

처가댁에서의 긴 휴가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일상에 몰입했다. 계획했던 2019년의 바램들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생활을 정비하고, 순간에 집중하였다. 그러다 문득 맞이한 휴일, 나는 사누키 우동이 먹고 싶어졌다. 매년 처가댁을 방문할 때면 가게 되는 처가의 단골 우동집의 쫄깃쫄깃한 면발의 우동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우동이 먹고 싶다고 한국에서의 일정을 뒤로하고 갑작스럽게 가가와로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가와에서 먹던 우동에 대한 향수병이 극한에 이를 즈음, 나는 아내에게 나의 고충을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아내는 채비를 하고, 홍대로 가자고 했다. 그곳에는 아내가 고향의 맛이 생각날 때면 가는 우동집이 있었다. 이 집은 나도 아내와 연애를 하던 시절에 한 번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던 고향의 맛이었는데 …, 이제는 내가 그 맛을 느끼기 위해 그곳으로 가고 있다니 …,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일본에서 처가의 식구들과 가족 여행을 떠나기 전 먹었던 큼지막한 유부가 감동이었던 아침의 우동


아내와의 연애 초기, 신촌에서 그녀를 만날 때면 아내는 정말 어쩌다가 한 번씩 고향의 맛이 그립다고 했다. 그리고는 일본 가정식이나 일본식 덮밥, 사누키 우동 등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내를 통해 알기 시작한 일본이었고, 아내를 위해 관심을 가졌던 일본이었기에 그때는 아내가 말하던 고향의 맛의 의미를 나는 이해는 했지만 깊게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저 나는 대학원 공부를 하기 위해 타국으로 와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내의 심정을 헤아릴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말했던 고향의 맛의 의미를 나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음식 자체에서 느껴지는 맛도 맛이지만 그 음식을 입속에 담을 때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고향에서의 추억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내는 고향이 그리워질 때마다 고향에서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해서 먹었던 것이었다.


고향의 맛을 품고 있는 홍대 우동집의 사누키 우동


고향의 맛을 품고 있는 사누키 우동 한 그릇을 금세 비워버렸다. 일본에서 처가의 식구들과 가족 여행을 떠나기 전 먹었던 큼지막한 유부가 감동이었던 아침의 우동, 아내의 고향에 방문해서 처음으로 맛보았던 사누키 우동, 처가댁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처가의 단골 우동집을 방문하며 충분하게 우동을 먹었음에도 또 우동 생각이 나서 먹었던 처갓집 근처 우동집의 우동이, 홍대의 우동을 먹고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내 덕분에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그리움이 묻어 있는 맛을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보려고만 했던 삶의 기쁨과는 다른, 살아가는 또 다른 즐거움을 나는 아내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 낸 일상이 그리움이 되어 음식을 통해 되새겨지는 그 감동을 이제는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내를 포함해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의 삶의 과정을 성실히 살고, 지금 이 순간에 더욱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아내는 나에게 고향의 맛으로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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