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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걷다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오래전부터 막연했지만 한번 방문하고 싶었던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텔레비전 너머에서 유명한 정치인들이 참배했다며 살짝살짝 보였던 서울현충원의 실제 모습을 한 번쯤은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장례지도학과 출신으로 죽음과 관련한 공부를 하며 자연스럽게 접할 수도 있었던 장소였지만 나에게 서울현충원은 언론매체에서나 접하는 아득히 먼 장소였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아내와 함께 맞이한 휴일, 요원하기만 했던 국립서울현충원의 방문을 우리는 해버렸다. 얼마 전부터 아내에게 나는 서울현충원에 한번 방문해보자고 했다. 나에게 아득하기만 했던 현충원 방문이 마음에서 떠오르는 순간, 나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다.


20190317 국립서울현충원

   

약간 쌀쌀했지만 미세먼지가 없었던 오늘은 서울현충원을 한 바퀴, 산책하기에 적당했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잔디밭의 중심에서 햇볕을 맞으니 살랑살랑 부는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바람을 가르며 날고 있는 가오리연을 보고 있자니 세상 속 무릉도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다른 가족들도 이곳에서 평화로운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홀로 나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아이의 엄마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며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와 아내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평화로운 오후, 세상의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아내와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환하게 웃으며 엄마에게 웃음 짓는 아이와 지긋이 품에 안은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아내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임신 초기의 아내이기에 우리는 평소보다 더 느긋하게 서울현충원을 산책했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걸음과 걸음을 천천히 떼었다. 잔디의 푹신함과 땅의 온기를 걸음마다에서 느끼며, 가볍지만 느릿하게 움직였다. 걸음이 느려질수록 평온함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세상이 만들어주는 행복의 시간은 느릿한 걸음 속에서 마치 꽃을 피우는 듯하였다.               


20190317 국립서울현충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세워진 호국영령들의 묘비석들을 바라보며, 그 모습 자체가 살아생전, 그들의 삶에 대해 위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그들에게 잘 정돈된 죽은 후의 안식처는 묘비석들의 도열로 영원한 예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병과 장군 그리고 국가 원수 등의 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살아생전의 계급이 묘와 묘비석의 크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가치는 그 크기를 비교할 수 없을 터였지만 살아생전의 그들의 계급은 죽어서도 지속되고 있었다.                       


20190317 국립서울현충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의 묘소를 순차적으로 살펴보았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힘썼던 전 대통령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듯 그들의 묘소는 조선시대의 왕릉처럼 웅장했고, 정돈되어 있었다. 국가원수 묘역에서만 볼 수 있는 헌시비나 기념비에 새겨진 글들을 통해 그들의 살아생전 공적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김영상 대통령 묘역을 방문하니 국립서울현충원을 돌아보는 일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출구로 향하는 길게 늘어진 길을 걸으며, 나는 아내에게 자신의 조상님께서 이곳에 모셔지지 않은 사람들은 서울현충원을 둘러보며 무엇에 집중할 것 같냐고 물었다. 아내는 약간의 지체도 없이 자연스럽게 국가원수묘역을 둘러보는 것에 집중할 것 같다고 했다.         


20190317 국립서울현충원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다수의 호국영령들의 삶의 가치가 생전의 계급에 의해 온전하게 기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후손들이 마련한 단순한 분류 기준에 의해 그들의 삶의 가치가 완전하게 보전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죽어서도 존재하는 계급의 현장을 걸으며 느낀 세상의 단면을 알려주고, 출세의 삶을 강조해야 하는가? 아니라면 무엇을 알려주어야 하는가?


평온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답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온 힘을 다해 걸어가고자 하는 그 길을 스스로 찾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나는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흐트러짐 없이 온전하게 해내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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