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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첫 경험

[한일부부 인생의 만찬]


"우리 저녁에 외식할까?"

"오늘 고등어조림하려고 했는데 …, 밖에서 먹고 싶어?"

"응, 외식하고 싶네~ 오빠는 오래간만에 갈비 좀 뜯고 싶은걸!"

"그래 그럼~ 오늘 저녁은 그걸로 먹자!"


카톡 대화창을 닫고, 나는 바로 검색창으로 들어가 맛집을 검색해 보았다. 집 근처에 먹자골목이 있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동네 맛집을 찾을 수 있었다.


퇴근 후 우리는 집에서 만나 검색했던 '양념돼지갈비 숯불구이' 맛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맛집에 도착한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고민하지 않고 양념돼지갈비 3인분을 우렁찬 목소리로 주문했다.


"이모~, 여기 돼지갈비 3인분이요!"


주문하는 것만 봐서는 포스 넘치는 진정한 돼지갈비 마니아였다.




사실 나는 양념돼지갈비 숯불구이를 마지막으로 먹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안 먹은 지 한 10년쯤 되었을까! 정말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그것을 먹지 않았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수험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공부를 하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즐겨하던 테니스도 접었던 나는 특히 섭식을 잘해서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건강을 챙기기 위한 몇 가지 금기사항을 스스로 설정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양념된 고기를 불에 구워 먹지 않는 것이었다. 양념된 고기는 불에 구우면 유난히도 잘 탔다. 아무리 잘 구워도 양념된 고기는 탄부분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수년간 양념된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지를 않았다. 안 먹다 보니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내와 결혼을 한 후, 내 안에 형성된 섭식에 관한 몇 가지 금기사항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있다. 그 이유는 아내의 첫 경험(?)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혼자 쉬던 나는 불현듯 스친 생각을 붙잡고 있었다.


'내가 설정해둔 섭식에 대한 나만의 룰(rule)때문에 우리 부부가 먹는 것에서 너무 제한적인 것은 아닌가!'
'내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아내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데 내가 그것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나는 언제나 아내와 상의해서 의사결정을 한다곤 했지만 그 결정은 나를 너무 잘 알고, 존중하는 아내의 배려 속에서 나의 생각 쪽으로 편중되지는 않았는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나는 지금까지 지켜왔던 섭식에 대한 나만의 룰(rule)을 해제하기로 했다. 자유롭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무장해제하고, 아내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식들을 마음껏 즐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보고도 마음에서 섭식에 대한 기준이 생긴다면 그것을 새로운 룰(rule)로 삼고 실천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 부부가 간 집이 '양념돼지갈비 숯불구이' 전문점이었다. 결심 이후, 며칠간 내내 떠올린 메뉴가 이것이었다. 내가 가장 멀리했던 음식으로 제일 먼저 시작하고 싶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맛보는 양념돼지갈비 숫불구이

    

"한국에 와서 이런 거 먹어본 적 있지?"

"음... 없었던 것 같은데!"

"(놀라며) 그랬어, 오빠하고 연애할 때야 오빠가 안 먹었으니깐 못 먹었을 테고 다른데서 먹어본 적 없었어?"

"응! 없었어. 한국에서 양념돼지갈비를 이렇게 숯불에 구워서 먹어본 적은 없었어. 생고기를 구워서 먹어본 적은 많았어도~"


나는 설마 아내가 양념돼지갈비를 숯불에 구워서 먹어보지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만 먹지 않았을 뿐이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즐겨먹는 이 음식을 한국생활 5년 차의 아내가 여태 못 먹어봤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는 한국에서 양념돼지갈비 숯불구이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왠지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스스로 설정해 둔 섭식에 대한 룰(rule)로 인해 아내가 경험해야 할 수많은 첫 경험(?)들을 제한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내는 마치 어린아이 마냥 갈비를 뜯었다


아내는 구워진 돼지갈비를 무척 맛있게 먹었다. 고기를 입에 넣을 때마다 눈을 번쩍 뜨며, 맛있다는 말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흐뭇한 표정으로 어린아이 마냥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는 행복했다.


그때 이후 우리 부부는 틈틈이 이런저런 음식들을 맛보며, 첫 경험(?)을 하고 있다. 나도 스스로 만들었던 마음의 장벽을 걷어버리니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음식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꼭꼭 숨어있던 미식가의 본능이 내 안에서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음을 요즘 부쩍 느끼면서 말이다.  


얼마 전 아내와 동네의 소곱창 구이 맛집에서 곱창구이를 먹을 때 아내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여보야! 여보가 곱창 먹을 때 여보 머리 위에서 별이 터지는 것 같아!

그거 있잖아! TV에서 연예인들이 맛집 가서 먹방 할 때 머리 위에 폭죽 터트려주는 거 ~

진짜 맛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 정말 행복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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