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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야구와 아내의 운동신경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하고 아내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과정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을 둔하게 만든 것 같다.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바쁜 생활이었지만 나는 틈틈이 아내와 여가시간을 함께 보냈다.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집도 가고…, 대단하지는 않아도 이런저런 소소한 활동들을 둘이서 같이 할 수 있음이 즐거웠다. 그리고 같은 것을 하더라도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뭐랄까! 더 진하고 깊은 맛이라고 할까! 이것이 진정 참맛이었다.


그러던 중 스크린 야구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는 집 근처의 대형 쇼핑몰을 즐겨 찾았는데 그곳에는 스크린 야구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연습구를 몇 개 쳐보다가 게임을 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현재까지 총 5 게임을 진행하였다. 


스크린 야구 게임 중~


스크린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첫 번째 게임은 당연히 나의 승리였다. 나는 원래 어떤 운동이든 잘 습득하고 조금만 숙달하면 잘 하는 편이었다. 아내가 나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내와 게임을 한 이유는 아내와 함께 놀이를 한다는 것, 그 자체를 경험하고 느끼기 위해서였다. 아내와의 승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는 아내와 함께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보름쯤 지나 우리는 두 번째 게임을 하였다. 5이닝으로 게임을 하면 약 45분 정도 게임이 진행되었다. 게임의 난이도는 총 4단계 레벨로 설정할 수 있었는데 나는 2단계 아마 레벨로 선택하고, 아내는 1단계 루저 레벨로 경기를 진행했다. 


경기 초반, 생각보다 아내는 잘하지 못했다. 첫 게임 때는 처음 치고는 제법 공을 맞추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공을 못 맞추었다. 맞추어도 대부분 파울이었다. 그렇게 5이닝 말, 마지막까지 왔다. 나는 점수를 제법 내놓았지만 아내는 0점이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아내, 이번 공격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게임은 그대로 나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었다. 


아내는 마음을 비웠는지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타석에 들어설 때의 표정에서 예상되는 결과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아내는 초구를 받아쳐서 치는 것마다 안타를 만들었다. 매번 초구에 그대로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전부 안타가 되는 것이었다. 변화구와 직구를 반반씩 섞어서 기계가 공을 던지도록 설정했는데 아내는 구질에 관계없이 전부 안타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나의 점수를 따라잡은 아내는 이제 1점만 더 내면 나와 동점이었다. 나는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설마~' 그러나 아내는 나의 멋쩍은 의심을 비웃듯 다시 초구에 안타를 쳐내더니 단방에 2점을 더 획득하고 경기를 자동 종료시켜버렸다. 나는 손을 쓸 방법도 없이 그대로 역전패를 당한 것이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나는 아내의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상승기운을 자연스럽게 즐기며, 마음껏 자신의 에너지를 내뿜는 아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웬만한 여자들보다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었지만 운동을 즐겁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스크린 야구 게임 중~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는 운동을 같이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운동에 대해서는 서로에 대해 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아내가 내적으로는 명랑하고 활달하지만 행동에서는 늘 차분했기에 운동을 그렇게 잘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운동을 잘했다.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었고, 분위기를 타며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크린 야구를 통해 몰랐던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실 스크린 야구뿐만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같이 한 소소한 일상의 경험들을 통해 나는 아내를 더 깊이 알아가고 있었다. 연애를 할 때와는 또 다른 그것들을 유쾌하게 느끼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하는 경험이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깊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즐거움이었다. 살아가는 행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임을 나는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총 5번 진행된 게임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는 계속해서 1단계 루저 레벨로 했고, 나는 2단계 아마와 3단계 프로로 레벨을 바꿔가며 경기를 치렀다. 아울러 변화구와 직구는 반반씩 던져지도록 설정해서 경기를 치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스크린 야구 게임 중~


<좌측이 나, 우측이 아내>  

1 게임 8:3(아마:루저, 직구 100%)

2 게임 6:7(아마:루저, 직구 50% + 변화구 50%)

3 게임 14:8(아마:루저. 직구 50% + 변화구 50%)

4 게임 2:6(프로:루저, 직구 50% + 변화구 50%)

5 게임 9:4(아마:루저, 직구 50% + 변화구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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