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Jun 02. 2024

고통을 기억하는 코



잊고 있었다.
관장약 냄새 
병원 화장지 냄새 
마이비데 냄새


사람의 후각은 순간적으로 많은 정보를 파악하며 생각보다 꽤나 디테일한 정보를 구분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흙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날리는 냄새는 그 어떤 포유류나 짐승들보다 인간이 가장 잘 맡는다고 한다. 남성들은 여성의 배란기를 안다고도 한다. 놀라운 은 이것을 분석해 내야지, 하고 맘을 먹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자동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낯선 남자에게서 느낀 스킨 냄새가 수십 년 전 첫사랑의 그를 추억하게 하는 데에는 2초도 걸리지 않는다.








냄새로 고통을 기억할 수도 있음을, 이번에 깨달았다.

관장이 시작되자 갑자기 내일 있을 수술이 9개월간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이 수술이 그냥 안 왔으면 좋겠고 피하고 싶어졌다.

평소 집에서는 마이비데 티슈를 사용하지 않기에 마이비데의 향을 맡자 나름 향기로운 향임에도 울컥, 속이 역해졌다. 나에게 마이비데 티슈의 향은 병원에서 관장할 때 맡았던 냄새, 즉 [고통] [끔찍] [절대주의해라]의 카테고리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 냄새가 끝난 뒤엔, 그리고 수술실의 마취가스 냄새 끝엔, 엄청난 고통이 나를 기다릴 거란걸 알기에.



병동생활에서도 코는 열일을 이어간다.

비릿하며 달콤한 철분제의 냄새가 있고 매캐한 항생제의 냄새가 있다.
금식을 오래 하면 전해질이 부족해지곤 하는데 칼륨주사가 투여된다. 칼륨주사를 맞으면 혈관이 솨아아 하고 차가워진다. 음식에서 칼륨과 인은 곧 맛의 수치라고도 하는데, 혈관으로 투여되는 칼륨은 춥기만 하다. 칼륨이 들어가는 동안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이불을 덮고 가만히 누워 있고 싶어 진다.
환자의 금식을 서포트하는 비싼 약물이 있다. 방석만 한 커다란 사이즈의 팩에 담긴 수액인데 뽀얀 사골국물 같고 우유 같기도 한 약이다. 이거는 들어가기 시작하면 혈관이 좀 아프다. 보드랍고 폭신폭신할 것 같이 생긴 외양에 비해 몸에 닿는 느낌은 꽤나 생경하다.


고통스러운 병동 생활에서 새 힘을 불어넣어 주는 냄새도 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다.
간호사 선생님마다 풍기는 향기가 조금씩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상태가 좋지 않아 속이 잘 뒤집어지는 환자를 상대하시니 강한 향수 같은 건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은은한 로션이나 비누향이 풍겨온다. 손소독제 냄새도.
어떻게 관리를 하시는 건지 음식 냄새는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다.

수액이 잘 들어가고 있는지, 열은 없는지 체크하러 오신 간호사 선생님에게서 불어오는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안정된다.
어릴 때 맡던 엄마 냄새 같은 느낌이 든다.
괜찮은 것 같은. 안심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의지하고 싶어 진다.
간호 선생님들의 향기를 통해 오늘도 나는 병동 바깥 세상의 기운을 맡는다. 그리고 이분들의 손길과 케어를 통해 곧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게 되겠지.








독자님의 라이킷은 제게 사랑입니다 :D






매거진의 이전글 관장의 달인 - 난 팔이 평균보다 1인치 길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