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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는 여행 중 Sep 22. 2021

동화같은 마을에서 소설같은 만남을

가진 건 편도 티켓뿐, 240일간 이어지는 무계획 여자 혼자 남미 일주


전 세계 어디에도 ‘우리 남미 여행 가자!’라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해 주는 친구가 흔치 않은 걸까,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면 여기저기 혼자 떠나온 사람들뿐이었다. 그 무엇에도 구속될 것이 없는 우리들은 손쉽게 뭉치고 흩어졌다. 결국 혼자 온 남미에서 ‘정말’ 혼자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또 지구 반대편이라는 위치적 특수성에 우연히 한국인을 마주칠 때면 거의 이산가족 상봉의 한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인이세요? 한국인 맞죠? 와!!!!
마치 오십 년간 떨어져 있던 를 마주친 듯 기뻤다.


페루나 아르헨티나만큼 인기 있는 목적지가 아닌 콜롬비아. 그 안에서도 끝에서 끝까지 단 한 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는 작은 마을 과타페. 이런 곳에서 한국인을 만날 줄이야.
애초에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한 동네라서 누군가 길에 서있는 게 쉽게 눈에 띄는데 멀찍이 호숫가에 서있는 우리 아빠와 패션이 똑 닮은, 푸른색 블랙야크 재킷에 검은색 등산바지를 입은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배낭을 멘 걸 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일 터. 분명 대단한 여행을 하고 계실 거란 예감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호숫가의 오리들에 집중하느라 나를 못 본 건지 뒤에서 ‘저기요…’ 하고 부르는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눈치였다. 사투리가 섞인 억양은 다시 한번 아빠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같이 호숫가에 앉아 각자의 지난 여정에 대해 늘어놓았다.


젊은 시절엔 성공이 다라고 생각해서 바득바득 공부한 끝에 결국 치과의사가 되었고 이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딸아이 하나를 정성으로 키우며 시간을 다 보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렇다 할 경험 하나 없이 나이 들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깊은 상심에 빠졌다고 하셨다. 그 후로 일 년에 한두 달씩 이렇게 멀리 여행을 나오게 됐다고. 여행을 시작한 뒤로 진정한 본인을 찾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며 활짝 웃으신다.

함께 호숫가를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다 문득 그 안의 관광용 보트들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뱃멀미해요?' 하고 물으셨다. '저거 타볼까 싶은데 같이 탈래요?’


사실 저 보트들은 어제도 봤었지만 분명 비쌀 게 뻔해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던 차였다. 그런 속마음이 표정에 드러난 건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어서 말씀하셨다. ‘어차피 나 타는 김에 한 명 더 타는 거라 비용도 비슷할 텐데, 내가 낼게요. 같이 타요.’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완전 좋죠! 그럼 제가 이따 커피라도 살게요!’



푸근한 인상의 선장님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우리를 환영했다. 어제 엘 뻬뇰 꼭대기에 올라서 내려다봤던 바로 그 에메랄드빛 호수 속에 들어와있다니! 선장님은 섬들에 가까이 붙으며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 주셨지만 풍경에 매료된 내게 그러한 말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기분 좋은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던 머리칼과 상쾌한 공기만이 기억 속에 남았다.


보트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엘 뻬뇰 앞에서 잠시 정박하는 시간. 바로 어제 전망대를 내려가며 내 인생에서 널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라고 혼잣말하던 게 우습게도 이렇게 단 하루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쉴 새 없이 셔터 소리를 내다가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 될 풍경을 한가득 눈에 담았다.



덕분에 좋은 경험했다고 연신 감사를 표하며, 들뜬 기분에 커피 대신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호숫가 바로 옆 경치 좋은 테라스에 앉아 전통 음식인 트루차 (송어구이)를 시켰다. 반짝이는 호수, 시원한 바람소리, 가볍게 일렁이는 나무들, 입맛에 딱 맞는 음식. 순도 백 퍼센트짜리 행복이었다. 당장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완벽한 순간이었다.
야무지게 후식까지 먹은 후 계산서를 요청했는데 아저씨가 당연하다는 듯이 지갑을 찾기 시작하셨다. 손사래 치며 말렸지만 이어지는 아저씨의 말에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내 딸이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딸을 마주쳤을 때 이런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래요. 내가 이렇게 학생을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딸도 어디 가서 도움을 못 받을까 봐.’


결국 이번에도 계산서는 아저씨의 몫이 되었다. 수긍은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다. 어떻게든 신세를 갚고자 고민하던 끝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보트 안에 앉아서 구경했던, 호수를 가로질러가는 짚라인 투어! 이번엔 꼭 내가 계산해야지. 신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원하시던 보트 같이 탔으니까 이번엔 제가 원하는 거 타러 가요!’


좋다는 대답에 함께 도착한 짚라인 출발점.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는 멀찍이 서서 라인을 슬쩍 바라보더니 무서워서 못 타겠다고 세차게 고개를 저으셨다. 액티비티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이게 얼마나 안전한지 먼저 시범을 보이겠다며 당당하게 라인 앞에 섰다.



와, 큰 기대 없이 와본 건데 막상 타보니 너무 재밌었다. 물 위에 떠서 바라보던 호수와 줄에 매달린 채 바라보는 호수는 느낌이 각기 달랐다. 잔뜩 신이 난 채로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자, 이제 아저씨 차례예요!’ 웃으며 2인 어치를 계산하려는 내게 이제 자기는 나이가 들 대로 들어서 이런 거 못하겠다며 그냥 가자고 하신다. 무섭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으니 내가 탄 거라도 계산하고자 지갑을 꺼냈는데 이미 지불됐다는 직원의 말이 들려온다. 아, 이번에도 한발 늦었다니…. 적잖이 당황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나중에 내 나이쯤 되었을 때 젊은 여행객을 만나거든 그때 그 친구를 도와줘요.’


거짓말 같은 하루였다. 동화 속 삽화처럼 알록달록한 마을에서 소설에나 나올 법한 사람을 만나 이렇게 완벽한 하루를 보내다니. 그날 밤 과타페에서 일박을 더 하는 나와는 다르게 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며 크게 손을 흔들며 떠나가던 아저씨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 뵐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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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7개월이나 더 지난 뒤 귀국 날, 안부 인사를 드리고자 그리고 동전 하나조차 귀중한 여행지에서의 나보단 조금은 더 여유 있는 한국에서의 내가 늦게라도 신세를 갚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카톡 하나를 보냈다. 하루쯤 지나서 도착한 답장엔 사진 한 장과 함께 짤막한 한마디가 남겨져 있었다.

‘안전히 귀국했다니 다행이네요. 근데, 저는 아프리카예요~^^’


어쩐지 웬 동물들 사진인가 싶었다. 여전히 재밌게 지내시는구나.

나도 저런 여행자가 되어야지. 마음에 여유가 가득한, 진짜 어른이 되어야지.








내일은 어디서 눈을 뜰까요

가진 건 편도 티켓뿐, 240일간 이어지는 무계획 여자 혼자 남미 일주

By. 제니 (@hyeziin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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