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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트바리 Feb 17. 2020

늦은 밤, 바르셀로나

남편이 쓰는 쫄보 부부의 유럽 신혼여행 #2

첫날의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바르셀로네타에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걷기 위해 손을 잡았다. 나도 유럽은 처음이지만 나보다 더 두려움이 풀리지 않은 아내는 내 손을 꼭 붙잡기 일쑤였다. 걷다가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람이 보이면 괜스레 해변가 쪽으로 몸을 더 붙이거나 마주치지 않게끔 시선 처리를 하늘로, 땅으로 해댔다.


바르셀로네타에서 바르셀로나 시내 사이에는 해변가를 제외하고선 인적이 드물었다. 람블라스 거리에 비해 사무실이나 기업들의 사옥이 많은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이런 조용함과 한적함은 밤이 되니 막연한 두려움으로 느껴졌다. 사실 출발 전에 외교부에서 보내온 여행 안전에 대한 공문의 내용은 좀 공포스러웠다.


"외교부, 바르셀로나서 날치기 피하다 다친 중상 입은..."

"외교부, 여행경보 단계 격상"



술이 좀 들어가서 이런 사진을 찍고나선 두려움은 한껏 사라졌다.


쫄보들의 여행에 더욱 쪼는 맛을 더 하는 상황들이었지만 괜스레 불안했던 찰나였다.

하지만, 술을 조금 마신 우리는 여행 전에 걱정했던 걸 모두 날려버린 채 길거리 곳곳을 배회해보기로 했다.

신혼여행이지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유럽여행인 만큼 두려움으로 막연히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까웠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었다. 이 거리가 어딘지도 모른 채 말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유럽의 모습을 담아내다 보니 여행의 첫날 두려움 같은 감정들은 즐거움으로 바뀌어갔다. 자연스럽게 두려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기도. 다른 특별한 행위를 하기도.

두려움만 가지고선 걸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바르셀로나의 밤거리가 보였다. 그리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하루의 마지막을 보내는 걸 보게 되었다.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 앉아서 바다를 지켜보는 사람. 늦은 저녁 시간에 빨리 돌아가는 그런 것들이 보인다. 우리는 그런 풍경과 모습들을 보며 담기로 했다. 각자만의 방법으로.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눈으로 담으며 그 시간을 즐겼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나라에서 보내는 밤이라니. 늘 여행은 이런 부분이 설레게 한다.

내일은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이겠지만, 나의 기억에는 쭉 남는 것들이다.

여행의 기억은 대부분 이런 것들로 구성되더라.


그 날의 사람들의 모습. 그 날의 공기. 감정들.

시차로 인해 피곤할 법도 했는데 첫날은 이상하리만치 높은 텐션이 유지됐다.




셔터를 받고 난 뒤, 하루의 끝이 보였다.
2/3가 닫힌 셔터 안 쪽은  오늘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람블라스 거리 근처로 돌아왔다.

너무 긴 시간을 보냈을까?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모든 가게들이 웃으며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 보였는데

다들 하루를 마무리하며 호탕한 웃음소리와 하루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은 가게의 모습들이 보였다.


우리의 밤도 몸은 힘들게 만들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두려움만 가득했던 마음들이 상투적인 표현처럼 사르르 녹아 풀려서 설렘과 즐거움만 남게 된 하루가 됐다. 마음이 바뀌며 여러 가지가 달라져 보였지만 여행자는 여행자다. 적당한 긴장감과 경계는 필요하다. 이제 스스로 그 적절한 경계를 체감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여행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남들이 어떤 여행을 겪었다고 해도 그건 내 상황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두려움만 가득한 채로 할 수는 없다.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행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저 멀리 풍경과 사람들을 보면 어떨까.


멀리서 바라보니 조금 안심이 되며 그제야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지금 있는 곳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에 점점 빠져들었다.



바르셀로네타에서 람블라스 시가지로 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러니 갑자기 누군가 나올 때마다 놀랄 수밖에.



야근일 테지만 즐거워 보였다.



바삐 가는 모습이었다. 늦은 저녁시간이니 어서 돌아가는 듯 보였다.


하루가 끝나가듯 람블라스로 돌아와 보니 우리는 좀 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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