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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트바리 Jun 27. 2020

나의 이야기보다는 너의 이야기가.

너의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되는 이야기.

"이번 역은 금정, 금정입니다."

그제야 눈을 뜨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나 내리는 방향의 문 앞에 선다. 지금 여긴 어딘지 제대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정신 상태로 4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다. 나의 하루는 대부분 이렇다. 지하철 아니면 막히는 도로 위.


회사에서 집에 오는 그 여정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그렇지 않게 되었다. 감정의 대부분은 휘발되며 크게 여운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습관처럼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 내가 잘하고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면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다. 내가 짜 놓은 루틴대로 TV를 켜고, 컴퓨터를 켠 다음에 주말 간 다녀온 사진을 보정하는 일. 감정이 휘발되면서 나쁜 감정은 휘발되어 버리지만 내 기분 자체를 뺏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결혼하니 조금 달라진 구석이 있다.

나의 무미건조함은 사라질 필요가 있었다. 연애시절부터 그녀는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많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처음에는 도저히 어떻게 집중을 해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 리액션을 해줘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때때로 그런 고민들은 얼굴이 티가 나게 되고, 그녀는 그런 부분을 서운해하는 일이 있었다.


고민의 답은 사실 별 거 아니었다. 아내는 그런 행동들로 자신의 감정을 희석시키고, 휘발시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예민한 사람이라서 둔감한 나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철저히 그녀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느 날부터 듣는 재미가 생겼다. 아내는 자신의 하루가 어쨌는지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는데 이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TV에서 남자와 여자는 하루에 써야만 하는 단어의 수가 있다며 이야기를 하던 장면이 생각이 났는데 아내가 그 범주에 꼭 들어맞는 사람인 것 같았다.


사실 결혼 전 아내는 꽤 우울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잘 발현되지 않다가 마감 시즌에 돌입하거나 일이 많을 땐 그래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럴 때마다 늦게 끝나는 그녀를 태워서 집에 데려다주거나 주말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하거나 그럴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겐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마주 보며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장난을 치며 웃기도 하고. 참 시시하면서도 그냥 이게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하며 시작됐던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되어 끝나가는 하루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너의 이야기지만 그게 결국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오늘 하루는 어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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