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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트바리 Sep 04. 2023

태어나는 순간, 진정한 시작

남편의 출산일기 #7. 뒤섞인 감정을 뒤로하고 내가 마주한 여러 순간들

아이는 태어났지만 내 품에 안아볼 새도 없이 신생아실로 곧장 이동하게 된다. 그저 내게 남은 건 멀어지는 튼튼이의 울음소리와 출생확인서. 여러 감정을 느끼기보단 일단 아내의 병실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제왕절개는 4박 5일이다. 자연분만보다 이틀이나 더 입원을 해야 하는데 수술을 한 몸인데 병실까지 남들 눈치를 보고 싶게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1인실을 배정받는 것이 중요했지만 응급으로 수술하는 바람에 병실의 선택권이 없었다. 먼저 3인실로 입실한 후에 다음 날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3인실의 병실을 간단히 설명하면 제왕절개 산모들에겐 추천하지 않는 병실이다. 옆 베드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보호자의 움직임이 너무 제한적인 데다 말조차 크게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나마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지만 이 위치는 대부분 공용 냉장고가 위치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면에서도 보호자가 몇 배의 신경을 써줘야 한다. 가장 최악이었던 건 아내가 스스로 거동을 할 수 없는 몸 상태로 그저 하얀 천장만 봐야 한다는 사실. 그저 빨리 내일 1인실이 비어서 옮기기만을 바랬다.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던 찰나에 신생아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가 유도분만을 하다 나와서 그런지 피를 좀 먹었거든요. 그래서 추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한두 시간 정도 후에 결과 알려드릴게요." 뭐라 답할 수 없었다. 아내의 상태도, 아이의 상태도 모두 좋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그저 먹먹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라도 좋은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야지.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커져가는 불안을 꿀꺽 삼키며 결과와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랬다.


병원 생활 2일 만에 불어난 짐들을 정리하다 보니 2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그때 마침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에게 내색하지 않고 일어나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나가서 병실 밖에서 전화를 받았다. "네, 튼튼이 보호자 분 맞으시죠. 검사 결과 이상 없고, 내일부터 면회시간에 오시면 됩니다." 다리가 풀리는 줄 알았다. 내 복잡했던 머릿속은 한 템포 쉴 수 있었다.


내가 처리하고 알아볼 게 많아서 뒤섞여버린 감정을 마주할 새도 없이 신생아실에 방문해서 면회 절차와 면회증을 미리 발급받아서 튼튼이와 만날 준비도 끝냈다. 튼튼이의 상태도 괜찮고, 면회할 준비도 했고, 아내의 상태와 1인실 배정 신청도 끝냈다. 그제야 아내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할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1평도 안 되는 작은 커튼 속 공간에서 평생 내쉴 안도의 한숨을 다 내쉰 거 같다.


아내의 상태를 뒤로 하고 밥을 먹으러 나왔는데 밥이 넘어가겠나. 사실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걱정하고 있을 양가 부모님들에게 전화를 드려야 하기에 나온 측면이 컸다. 아내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상태이기에 부모님들의 과도한 관심으로부터 아내를 좀 멀리해주고 싶었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나서 병실로 돌아가는 길 하늘은 어찌나 맑은지. 어서 아내를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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