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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Dec 29. 2018

너가 잘못 아는 거야

2018.12.29


 생각해보니 나라는 사람은 사람에 대한 방어기제가 심각한 거 같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도 나의 솔직한 일상이나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그에 맞게끔만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아예 물어보지 않으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다. 그리고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그저 가만히 앉아서 듣는다. 내가 만난 친구들이 정말 친하지 않은 친구들이었을 수도 있다.(유일한 고향 친구들이지만..)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다만 나는 가족들과도 이렇다. 그래 어떤 의미에서는, .. 가족들과 친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단 한 번도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으니까. 오늘 밥을 먹다가 어쩌다 이런 얘기가 나와서 저런 나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맞는 말 같다. 내가 문제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가족들 하고도 이러니 어디 가면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된 생활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게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계기였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필연적인 이유나 특별한 때가 아니면 '굳이 내 이야기를 해야 하나'라는 이상한 믿음에 기댄 방어기제가 항상 웅크려 있었다. 나를 이만큼 알게 된 사람이, 내가 이만큼 깊은 교류를 한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지거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어지는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찾은 나만의 도피법일 수도 있겠다. 진짜 나의 속마음을 말하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나. 그런 사람을 찾기가 이렇게도 힘들었었나. 정말 단 한 명이면 될 거 같은데. 내가 사람들을 피해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외로워하고, 이건 정말 답이 안 나오는 문제 같다.


 이런 나의 방어적인 성향은 작품을 만들 때도 드러나는 거 같다. 너가 뭘 말하고 싶은 지 모르겠다며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 나는 그것 또한 나를 너무 많이 드러낸 거 같아서 알몸이 된 마냥 부끄러웠는데도 말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글들을 지금 와서 읽어보면 하나 같이 솔직한 글이 많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내 감정을 그럴싸하게.. 뭔가 있는 듯이 감춰놓았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드러낼 듯했지만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역시나. 이유모를 허무함과 없이 지지 않는 외로움은 이것 때문인 걸까. 항상 나만 이러는 건 아닐 거 같은데 말이다. 가끔은 사람들도 사실은 다 이렇게 느끼고 있지만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상상해본다. 정말 그렇게 연기와 진짜를 섞어서 하는... 정말이지 능숙하고 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은 내가 무뎌지지 못한 걸까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 술자리에서 할 일이 쌓여있다며 금방 나와버렸다. 그저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며 나에 대해 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거기서 '너가 잘못 아는 거야, 나는 사실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며, 그 사람들이 아는 나를 바로잡을 노력을 할 자신이 없었다. 대뜸 '너가 뭘 알아?' 라며 일단 화를 낼 것만 같았다. 애매하게 술을 마시다 나와 취하지도 않고 이도 저도 아닌 기분이 들었다. 그냥 술집에서 나온 밖은 추웠고 집에 가는 버스는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그저 너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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