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삶이 망하는 게 아니라, 회사 다니다 삶이 망할뻔
어느 날, 부사장님이 나를 개인 사무실로 불렀다.
'OO. 혹시 이직 준비하니?'
'(헉. 어떻게 아셨지?) 아, 네.'
나는 솔직하게 이직을 준비하고 있음을 말했다. 왜 이직을 생각하는지 묻기에,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말했다. (한 100 중에 20?). 대화는 결국 다시 열심히 다녀보자라는 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버린 나의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고, 나는 환승이직할 곳을 찾지도 않은 채로 퇴사를 했다.
주변의 가족, 친구들은 다음 회사를 준비하지 않고 그냥 퇴사해버린 나를 나무랬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심적으로 너무 괴로웠던 것이다.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힘이 들었다.
한 여자 동료는 대뜸 나에게 "옛날 사진 있어요?"라고 묻더니, 나중에 "성형한 사람들은 옛날 사진 달라고 하면, 다 없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알고보니 지가 코수술을 해서 나도 수술을 했을거라고 생각한 거였다.
또 이수역 폭행 사건이 있던 날에는 40대 초반 남자 상사는 피해자를 "쿵쾅이"라고 지칭했고, 내게"OO씨는 예쁜 얼굴, 화장도 좀 하고 다녀요'라고 말했다. (‘귤껍질 피부에 배불뚝이인 당신이나 자기관리 좀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외에도 이유 모를 무례함들에 나는 점점 날을 세우기 시작했고, 예민해졌고, 화가 많아졌고, 우울해졌다.
사실 나는 입사한지 채 1년도 안 되었을 때부터 '3년만 버티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일반적으로 3년은 경력을 쌓아야 경력직으로 이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을 버틴 것조차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할텐데, 나는 어쩌다보니 4년을 버텼다. 그동안 나는 연차 대비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았고, 빠른 퇴사를 목표로 했기에 연봉의 대부분을 저축해 지갑은 꽤나 두둑했지만, 마음은 텅 비었다.
11층인 집 창문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자주 들었다. 마음이 많이 힘들어지자, 연봉이 중요하다는 나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연차에 비해 많은 월급을 받으면 뭐하나, 내 삶이 행복하지가 않은데.'
결국 나는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 면접을 보기 위해 눈치를 보면서 연차를 썼다. 처음 면접을 본 곳에서 최종 합격을 해 오퍼를 줬다. 더 좋은 곳을 가기 위해 거절을 했다. 그리고 몇 주 후, 상사와 대판 싸우고 난 후 나는 갈 곳 없이 퇴사를 해버렸다.
퇴사를 한 것을 후회하냐면, 오히려 조금 더 빨리 퇴사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까지 그곳에 버틴 것은 내겐 득보다 실이 컸다. (그래도 끝끝내 버티려고 했던 나의 끈기와 오기는 높게 삼)
'회사의 일'이 아닌 비로소 '나의 일'을 하면서 나는 열정적이어졌다. 꼼꼼하지 못했던 내가 보다 꼼꼼하려고 노력하고, 시도때도 없이 내 일 생각을 한다. 이전의 직무 관련 책은 억지로 찾아 읽었다면, 이제는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마케팅과 브랜딩 관련 책을 주구장창 대출해 읽는다.
과거의 제가 그랫듯 회사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신 분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아파하면서 버틸 필요는 없다고 뒷일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퇴사하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퇴사한다고 삶이 끝나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일 수도 있다면요.
우리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