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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Hwang Nov 02. 2015

쇼닥터(Show Doctor)

흥행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전문가

* Show Doctor

엔터테인먼트 직업 가운데 '쇼닥터(Show Doctor)'가 있다. 정의를 내리자면, 공연작품의 각종 쇼 요소를 조정하여 흥행 가능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감독이다¹. 보통 안무가(Choreographer)가 쇼닥터를 맡는다. 최근엔 의사 신분으로 방송매체에 출연하여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시술을 홍보하거나 건강 기능성 제품을 추천하는 것과 같이 간접, 과장, 혹은 허위 광고를 일삼는 의사를 빗대어 이르는 부정적 단어로도 '쇼닥터'란 말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원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문용어로 먼저 사용된 것이며 갑자기 시사적인 용어로 함께 쓰이는 바람에 중의적 단어가 되어버렸다².


쇼닥터와 함께 디벨로퍼(developer), 드라마터그(dramaturg)란 직업도 공연 업계에 새로운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흥행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역할은 쇼닥터와 같으나 하는 일의 범위와 성격이 쇼닥터에 비해 보다  세분화되고 구체적이다. 요즘엔 주로 뮤지컬 같은 종합 무대예술 작품의 제작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들 '공연 컨설턴트'의 역할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디벨로퍼는 무대 작품이 처음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작품의 전반적인 방향 설정부터 연출진 구성까지 조언을 하며 신인 창작자 발굴과 같은 '작품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다. 드라마터그는 연극에서 시작되었는데 외국 번역극의 경우 원작가와 번역가 사이 중간 역할을 맡는다. 직접 글을 쓰지는 않지만 연출의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자료를 찾아주거나 번역의 방향을 잡아주기도 한다. 이런 직업은 무대 공연 작품의 흥행 성공률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직업과 개념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0년 무언극 '난타'의 브로드웨이 진출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난타'는 대사가 없는 무언극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한국의 공연을 세계로 진출시키고자 전략적 모색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난타는 그렇게 기획된 것이었다. 쇼 비즈니스의 변방인 한국이란 조그마한 나라의 작품을 당시 세계의 쇼 비즈니스 중심인 브로드웨이에 진출시키기 위해서 난타 제작사인 PMC프로덕션은 The Broadway Asia Company란 회사를 접촉했고, 그들에게 난타를 보여준 결과 너무 한국적인 내용이어서 해외 현지인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면 공연 내용을 손대야만 했다. 그들이 내건 해외진출의 요건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해외 유명 콘테스트에서 수상할 것, 다른 하나는 그들이 정하는 쇼닥터를 통하여 작품의 내용을 현지인들에게 맞게 수정할 것이었다. 이 때 2000년 5월 한국에 들어온 쇼닥터가 여성 안무가인 '마샤 밀그램 닷지(Marcia Milgrom Dodge)'였다.

마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뮤지컬 시카고를 비롯해서 왠 만한 대형 작품들의 쇼닥터·감독으로 활약한 이 분야 베테랑이다. 원래 안무가 출신이다.


* <마샤 밀그램 닷지> 공식 웹사이트

http://www.marciamilgromdodge.com/


마샤는 당시 난타의 타악기적 극 요소를 더 충실하게 변화시켰다. 원래 있었던 칵테일 쇼를 과감하게 빼고 오리잡기 소동 등과 같은 코미디적 요소를 보강했다. 후에는 서커스 요소를 더 가미하는 등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다.


<점프>는 런던 웨스트엔드 진출에 앞서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2006년 스페인 출신 코미디 연출가 겸 쇼닥터 '다비드 오튼(Daivd Ottone)'을 영입하여 외국인의 눈 높이 수준으로 작품을 손보았다³.


David Ottone. 사진 출처 http://www.elcultural.com/noticias/buenos-dias/David-Ottone/6079

* David Ottone Twitter Account

https://twitter.com/davidottone


뮤지컬에 이렇게 흥행을 돕는 전문가가 늘어나는 이유는 뮤지컬은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보여주는 극 예술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무대장치, 음악, 연기, 춤과 같이 이전에 각각 독립되어 공연되던 무대 예술 장르가 하나의 복합 예술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 모든 요소를 통제하여 통일된 효과를 내게 하려면 더욱 전문화된 인력이 필요해졌다. 시험을 치를 때 종목이 하나이면 편하지만, 여럿이면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과 같다. 통제할 요소가 많다는 것은 통합해야 할 필요성도 커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통합은 표현의 효율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통합이어야 한다. 관객은 작품 전체로 평가한다. 관객의 입장은 매우 객관적이고 독재적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것과 들지 않는 문화적·감성적 기호는 연출자와 타협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객을 감동시키려면 작품 구성요소 전체를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느끼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런 다양한 요소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하나로  녹여낼, 관객 못지 않은 냉정한 '객관성'을 띤 주체가 필요해진다. 쇼닥터는 그 임무를 충실하게 하는 전문가다.


나는 2000년 초반부터 이 쇼닥터에 관하여 흥미를 느끼고 자료를 수집해 왔다. 쇼닥터의 대부분이 안무가 출신인데, 내가 느낀 흥미는 그들이 행하는 창작행위가 법률로써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 즉 안무의 저작권 보호가 현실에서 가능한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 '안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다.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4조(저작물의 예시 등) 제1항의 3호에서는 "3. 연극 및 무용, 무언극 그 밖의 연극저작물"로 무용을 저작물의 한 예시로 적시하고 있고, 그렇다면 그 무용을 창작하는 행위인 '안무'는 '무용'이란 저작물을 발생시키므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안무와 관련하여 저작권 소송이 벌어진 것은 내가 검색해 본 바에 따르면 두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그 판결(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11. 8 선고 2011가합23960 판결)을 보더라도 법원은 안무의 저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사건 중 하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나오는 '말 춤'의 안무가가 제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걸그룹 '시크릿'의 히트 곡 '샤이보이'의 안무가가 자신의 안무를 댄스교습학원에서 무단으로 사용하여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림으로써 저작권 침해를 당했다며 그 침해를 중지해 달라는 저작권침해금지가천분신청에 관한 판결이었다. 그 이외 안무 관련 저작권 소송은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사상이나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그 '표현'을 보호한다. 창작의 아이디어 보호는 산업재산권 분야(특허법 등)에서 다룬다. 예를 들어 저작권 보호기간 경과는 별론으로 하고, 신데렐라 이야기나 콩쥐 팥쥐 이야기와 같이 이 세상에서 비슷한 소재의 고전이 많지만 이야기의 표현(플롯, 대사, 인물 캐릭터, 서술 지문 등)이 다르다면 저작권 침해로 규정하지 않는다. 저작권법은 표현을 보호한다.


저작물이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으려면 저작성이 있어야 한다. 법에서는 다음 요건을 요구한다.

1. 문학·학술·예술의 범위에 속할 것

2. 창작성이 있을 것

(창작성 인정 기준에는 크게 두 가지 이론이 대립한다. 저작권 인정 기준을 창작자의 '노동에 대한 대가'라고 보아 아주 낮은 수준의 창작성만으로도 그 창작성을 인정하는 <노동이론(勞動理論)>과, 저작물이 저작권법의 궁극의 목적인 '문화발전을 유인해 준 것에 대한 대가'로 보아 어느 정도의 문화발전을 유인할 만한 수준의 창작성이어야만 한다는 <유인이론(誘引理論)>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법원의 판례 태도는 <노동이론>을 인정하고 있다. 즉 최소한의 창작성만 있어도 저작성을 인정하는 추세다.)(전문법률과목 저작권법I 2001년, 사법연수원, 19쪽)

3.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일 것

(앞서 이야기 한대로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표현'을 보호한다. 저작물이 관념의 표현이기 때문에 존재를 입증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데, 이 표현은 저작물이 이 세상에 실제 존재한다는 입증이자 타인이 그 저작물을 인식할 수 있는 대외적 인식도구인 것이다. 그런데 증인 없이 창작자 혼자만 그 저작물을 표현했다고 한다면, 저작권법의 제정 취지 중 하나인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도모'에 부합하지 못하므로 법률상 저작물의 표현은 '외부로 발현'될 것을 요구한다. 이 '대외적 표현'을 저작권법 상 '공표'라고 하며, 이것은 저작물이 저작권법 상 저작물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요건 중 하나다.)(전문법률과목 저작권법I 2001년, 사법연수원, 37쪽)


저작성을 인정받기 위한 위 요건 중 세 번째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일 것'이란 측면에서 볼 때 안무는 음악 저작물과 함께 표현의 물리적 지속성 측면에서 다른 형태의 저작물, 즉 어문저작물이나 미술저작물 보다 매우 불리한 점이 존재한다. 저작행위는 관념의 표현이다. 관념은 비물질이며 생각의 과정이고 저작물은 그 결과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안무나 음악 창작에 비하여 다른 저작행위는 저작과 동시에 기록이 이루어진다. 이 기록은 앞서 언급한 '대외적 표현'에서 매우 유리하다. 어문저작물은 작문이란 대외적 표현이 창작과 더불어 원고지란 결과물로 발생되며, 미술저작물 역시 그림이란 물리적 결과물이 필연적으로 발생된다. 그렇지만 음악은 소멸성 재료인 '소리'를 그 대외적 표현의 원료로 삼고 있고(물론 기보를 통하여 그 음을 악보로 기록할 수 있지만 악보 자체가 저작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악보가 기록하고 있는 관념적 소리의 조합이 저작물로 인정 받는다.), 안무는 무용이란 동작을 하기 위한 '몸짓'을 대외적 표현으로 삼고 있어서 이 또한 창작의 표현이 소멸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디어 기술이 발달한 요즘엔 음악은 녹음을 통하여 음반을 대외적 표현으로 삼고 있고 안무 또한 녹화를 통하여 영상이란 대외적 표현을 객관적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저작물의 대외적 표현을 물리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을 '고정화(fixation)'라고 한다. 실제 저작권 소송에서는 이 고정화가 저작성 입증 면에서 크게 작용한다. 여기서 문제는 동작의 3차원성이 존재하는 안무이다. 안무는 대외적 표현이 보는 시각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보이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시각 차이는 창작의 유사성에 혼란을 일으킨다.


3차원 공간을 창작의 배경으로 삼는 안무는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법에서 저작권 침해의 기준으로 삼는 '실질적 유사성(substantial copying)'을 판단하는데 기준이 애매해지는 단점이 있다. 같은 동작이라도 360도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유사하다 혹은 다르다의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동작은 멈춰진 몸짓의 연결이고 그 연결은 3차원 공간에서 위치 벡터를 이동시킨다. 동선이 그것이다. 동작의 연결은 어느 정도 거리로 어느 각도로 연결시키느냐에 따라서 소위 창작에서 연결의 기본 단위로 부르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달라지며, 그 아티큘레이션이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동선까지도 창작성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 또한 저작성이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된다. 왜냐하면 저작성을  인정받기 위한 창작성이 있으려면 적어도 이미 누구나 사용하여 관용적 표현으로 굳어진 클리셰(cliché)는 배제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무의 저작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저작물로 인정받기 위한 대외적 표현을 영상으로 기록하되 이러한 3차원 판단이 가능한 기록 도구가 필요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나는 이 점 때문에 안무를 기록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찾았는데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최근 다시 그와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찾았는데, 예전에 내가 보던 것들에 비하여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안무 관련 저작권 침해 소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송은 서로 다투는 쟁론이므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하여 최대한 유리한 자료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첨예한 노력을 기울인다. 단순히 안무는 저작성이 있을 것이란 속단은 좀 위험한 발상이라고 본다. 안무의 저작성을 인정하더라도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며, 안무는 인체의 기하학적 특징(군무의 경우 포메이션 포함)을 창작성으로 삼기 때문에 일상의 움직임(클리셰)과 겹치는 동작으로 인해 저작성을 부인할 가능성이 어느 부분에서는 존재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고민이 나를 안무를 효율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찾아 보게 만들었고 그 결과 아래 소프트웨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음악을 입력시키고 그에 따른 조명을 무대에 세팅한 뒤 각 무용수들의 동선을 디자인하는  것에서부터 공연 전 리허설을 다양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입력 후 수정도 가능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분 중에 다른 프로그램을 알고 있다면 필자에게 제보를 부탁드린다.


* 참고 : Choreo Technology사의 소프트웨어 <Dance Designer>

공식 홈페이지

http://www.choreopro.com/

Dance Designer 데모 영상

http://youtu.be/q4k4MAoaF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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