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약속된 날이 다가올 때면 셜레고 기다려지는 모임이다.
다들 그러하듯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두 달이나 세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만난다.
가끔 만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하루가 어떠한지, 어제 점심으로는 뭘 먹었는지 시시콜콜 알지는 못한다. 우리는 꼭 두 달 또는 세 달만큼의 궁금증만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어제 뭘 했는지 또는 지난주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요즘 건강은 어떤지, 그동안 별일은 없었는지, 또는 부모님들은 안녕하신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갑지만 가끔은 변한 듯한 외모에 호기심이 일기도 한다.
"어디 아파?"
이번 모임에서 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첫인사로 건넨 말이었다.
"아니, 안 아픈데 왜?"
"얼굴이 좀 안돼보여서, 좀 핼쑥해진 것도 같고...."
아니다. 난 그야말로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지인의 얼굴이 내 눈에는 훨씬 핼쑥해 보이고 눈도 퀭해 보였다.
"자기야말로 어디 아파?"
"아니, 왜?"
순간 눈이 퀭하다는 말이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눈이 커진 것 같아서, 그럼 혹시 뭐 한 거야?"
"뭘 해?"
"뭐 시술 같은 거, 눈이 예뻐진 것 같아서."
난 얼버무렸다. 그제야 지인은 안도의 미소를 보이며
"하긴 뭘 해. 안 했어. 내가 살이 빠져 보여?"
라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가 최상의 컨디션들이었다. 하지만 중년의 우리는 어쩐지 모두가 아파 보였다. 피곤해 보였고 지쳐 보였다.
또 다른 언니는 옆에서 연신 인공눈물을 넣어댔다. 평소에 안구건조증이 있는 그 언니는 지난번 모임에서만 해도 한두 시간에 한 번 정도 넣었던 것 같은데 안구건조증이 더 심해진 건지 이번 모임에서는 유난히 자주 넣었다.
낯빛은 지난번보다 조금 더 어두워진 것 같고 머리카락은 가늘고 약해 보였다.
그 언니가 휴대폰 화면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화면의 글씨가 무척 커져있었던 이유였다. 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나도 최근에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여 휴대폰 화면의 글씨 크기를 키웠었다. 그런데 화면을 열 때마다 그 큰 글씨 때문에 오히려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다시 원위치시키고 말았다. 내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이랄까. 화면을 볼 때마다 눈을 좀 찌푸려야 하지만 아직은 큰 글씨를 매일 마주하고 싶지가 않았다.
우리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는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저 살면서 어느 순간 '아, 이 사람도 나이가 들었구나.'라고 느낄 뿐이다.
하지만 가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변한 모습은 보는 순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없던 흰머리가 눈에 띄고 눈가에는 주름이 깊어진 것 같다. 내 눈에 저들이 나이 들어 보이는 것처럼 저들 눈에도 내가 나이 들어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예전에 TV에서 어느 연예인이 '엄마는 집에서 뭐 하시냐'라는 질문에
"엄마는 집에서 늙어가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늙어간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모습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본다는 건 좀 서글픈 생각이 든다. 특히 남편이나 친한 친구에게서 그런 모습을 볼 때는 더 그렇다.
젊은 날 활기차고 싱그럽던 모습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머리에서는 흰머리가 늘고 얼굴은 푸석해졌다.
욕심이겠지만 난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그냥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몸은 어쩔 수 없이 늙는 거라면 마음만이라도 젊었을 때의 꿈 많던 그 마음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