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여전히 세상은 녹록지 않았고 몇 년간 정신없이 달려만 왔던 터라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지는 못했다.
삶이 퍽퍽하다고 느껴질 때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치고 피곤한 몰골에 감정은 비쩍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고, 열심히 쌓아왔다고 여겼던 것들이 허무하다고 느껴지고 소재는 바닥을 보였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삶에 활력이 되어줄 계기와 새로운 소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 어디론가 떠나야겠다.
때 마침 오랜 친구인 영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호: ' 여행을 갈 거라면 남미로 가보는 건 어때?'
상진: '남미?'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세월 속에 잊고 있던 꿈 하나가 떠올랐다. 어떤 다큐에서 여행가가 이과수 폭포를 둘러보며 그 웅장함을 보여주었는데 방송을 보고 있던 나는 아름다운 대 자연 속의 그 여행작가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도 저곳에 가서 이과수 폭포를 보고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으면..'
바램은 있었지만 지구 반대편의 그곳에 내가 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영호의 말 한마디는 까맣게 잊고 있던 꿈을 다시 상기시켜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현재 진행하던 일들과 계획된 일들, 남겨질 가족, 가장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부담되는 경비.
어느 것 하나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고민을 하고 또 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기를 그냥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면 분명 부작용이 올 것만 같았다.
갈까 말까를 수십 번도 고민했다. 그리고는 결국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갈 수 있겠냐는 생각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결심이 선 뒤에 여러 달에 걸쳐 경비를 모으고 일정들을 조정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선택들은 조금씩 구체화되었고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하나씩 정리되어갔다.
준비를 하면서도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다는 사실은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그것도 유럽도 아닌 남미라니..
대략 정리가 되고 나서야 중요한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당장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떠나자고만 생각했다.
지구 반대편의 잘 알지도 못하는 생소한 곳으로 떠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 안도감이 드는 이유는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도 다시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족들과 내 삶의 터전이 이곳에 있기에 나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잘 다녀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길고도 먼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책임지고, 짊어지고 있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떠나는 길은 무척이나 홀가분했고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 채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