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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이란 초능력!

영화 '하이파이브'

by Ellie

어릴 적엔 나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면 나는 초능력을 갖고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뿅'하고 그 능력이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늘을 날거나, 시공간을 마음대로 이동하거나, 투명인간이 되거나, 사람을 마음을 읽거나, 적어도 병따개 없이 ‘이것저것’으로 맥주병을 딸 수 있는 능력 정도는 있겠지. 그런데 현실은 무언가를 늘 까먹고 놓치고 후회하고 이를 영원히 반복하는 그저 그런 K직장인이다. 늦지 않게 출근하고 땡 하고 퇴근하는 것만 해도 그저 기적이다. 초능력은커녕 남들처럼 ‘뻥’소리 나게 맥주병도 못 따는 힘도 요령도 없는 그냥 사람.


영화 ‘하이파이브’는 평범한 다섯 사람이 의문의 장기 기증자로부터 심장, 폐, 신장, 간, 각막 등 장기 이식 후 건강해진 몸과 함께 덤으로 초능력까지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괴력의 초능력, 강풍의 초능력, 만병통치 초능력, 젊어지는 초능력 등 각자의 능력을 얼핏 보면 대단하다.


태권소녀 ‘완서’는 괴력의 힘을 갖게 되고, 작가 지망생 ‘지성’은 엄청난 폐활량을 보유하게 된다. 작업반장 ‘약선’은 무엇이든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됐고, 힙스터 백수 ‘기동’은 전자기파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본인은 예뻐지는 초능력을 얻었다고 믿고 있는 ‘선녀’는 초능력을 흡수해 전달하는 힘, 이들을 모두 연결하는 막중한 힘을 지녔다.


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막강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들 다섯 명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갖고 있고 어딘가 모르게 조금 부족하고 소박하다. 초능력자들이 모였으니 세상을 구할 대단한 전투가 벌어져야만 할 것 같지만 막상 이 능력을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주변 사람을 돕고 자신과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빌런과 결투를 벌일 뿐이다.

이들은 팍팍한 현실 앞에서 어쩌면 각자의 ‘쓸모’를 걱정하던 사람들이다. 아픈 몸 때문에 아빠에게 늘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닐까 걱정하는 딸 완서, ‘지망생’이지만 알고 보면 백수인 지성, 힙스터란 수식어가 붙지만 결국은 백수인 기동, 과거 우울증이 있어 자살 시도를 해 자신을 구출한 소방관이 의식불명이 되어 죄책감을 갖고 있는 선녀, 대리운전 일을 하며 간호사를 꿈꾸지만 사이비 교주에게 평생을 속아 헌신한 약선 등 사회 통념에서 비켜 나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갖게 된 능력은 선택받은 자들의 특권이라기보다 오히려 삶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쓸모와 능력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질문이 나를 괴롭히던 때가 생각났다. 실은 지금도 늘 자문한다.‘나는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 ‘내 쓸모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나는 이곳에 필요한 존재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수도 없이 맴돈다. 뛰어난 재주도 없고, 언제나 대체 가능한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닐까 하는 의심.


하지만 알고 있다. 진짜 초능력은 특별함이 아니라 꾸준함이라는 걸, 그런 평범함을 감사하게 여기고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살아가는 힘이라는 걸 말이다. 나라를 구하진 못해도, 내 주변인들을 괴롭히는 빌런을 말끔히 퇴치하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다정하고 다감하게 꾸준히 ‘하이파이브’ 해주는 게 내 (초)능력이라고 우겨본다.

그래도 가끔은 내일 오를 주식 정도는 알 수 있는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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