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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by Ellie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옛 인연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한다. 어떤 관계는 특별한 이벤트도 갈등도 없이 평생 이어지고, 한때 서로를 맹렬히 갈망했지만 특별한 연유도 없이 멀어지기도 한다. 아침저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뭘 먹었는지 뭘 하는지 시시콜콜 챙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멀어지기도 하는 게 인간관계니까. 연인사이도 친구사이도 마찬가지다. 뭐가 더 옳거나 그르지 않고 더 바람직한 형태의 관계가 따로 있지도 않다. 그저 그땐 그랬고, 지금은 지금 이어서다.

관계의 기류가 변하거나 서로의 감정의 온도가 변하기도 하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에 몰두하고자 할 때나 연인과의 관계가 막 시작되어 다른 것에는 열정을 쏟을 에너지가 없을 때 오래된 친구와 소원해질 때가 있다. 이사를 가거나 이직을 해서 물리적인 거리감이 생기고 난 뒤 만나는 횟수가 줄고 대화의 양도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내 일상에서 기존의 친구는 페이드아웃되기도 한다. 얄궂게도(혹은 다행히도) 그 사이 새롭게 몸담게 된 시공간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인연이 페이드인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보게 된 영화 한 편과 유튜브 영상 때문에 불현듯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바뀌는 바람에 사람 자체를 멀리하게 될 수도 있다. 갑자기 몸이 아파 세상 모든 게 무의미해지고 친구랑, 가족이란, 연인이란 무엇일까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친구의 의미를, 더 나아가 인간관계의 의미를 골똘하게 되짚어보게 한다. 영화의 배경은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이다. ‘파우릭’과 ‘콜름’은 하루도 빠짐없이 동네 펍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시시껄렁한 수다를 떠는 사이다. 다정하고 돈독한 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절친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콜름’이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그냥 이제 네가 싫어졌다”는 한 마디. 친구의 절교를 받아들일 수 없는 파우릭은 친구를 찾아가 묻기도 하고 따지기도 하고 사과도 하며 관계를 회복해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한다.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싶고 섭섭한 게 있다면 풀어주고 싶은데 아무 이유가 없다고 하니 더욱 미칠 노릇이다.

끈질기게 절교 선언의 이유를 묻는 파우릭에게 콜름은 말한다. 유한한 인생에서 더 이상 너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고. 앞으로는 사색하고 작곡하며 살 거라고 말이다. 파우릭에게는 콜름과의 시간이 일상에서의 즐겁고 평범한 수다이지만, 콜름에게는 그저 무의미한 수다의 시간이 되어버린 거다.


영화를 보면서 양가적인 마음이 들었다. 어떤 날은 콜름이, 어떤 날엔 파우릭이 이해됐다. 맘이 식어버린 친구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 하는 ‘파우릭’이 짠하게 보이며 저렇게까지 잔인하게 돌아선 ‘콜름’이 무정해 보였다가, 어떤 날은 저렇게까지 질척이는 ‘파우릭’의 집착이 관계의 유해함을 드러내고 따지고 보면 인간관계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설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자극만으로도 끊어질 수 있는 얄팍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원한 수직적인 관계도 수평적인 관계도 100% 동등한 관계도 없다. 50대 50의 동등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으련만 사람의 마음 씀씀이란 불타오르기도 하고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한다. 그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뿐이다. 관계의 핑퐁 속에서 인간은 성장하고 또 좌절하고 그저 살아낸다. 어쩌면 그게 우리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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