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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불행을 맞이할 때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by Ellie

'오늘도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만끽했다'며 자위하는 사이, 가끔씩 치고 올라오는 '권태'라는 단어가 조금씩 선명해지는 요즘이다. 분명히 대단한 불행이나 슬픔은 없지만 이게 도대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불안이 밀려온다. 대단한 행복을 희망하지 않고,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행복을 추구하며 안정적이고 안전한 일상을 추구하는 것. 아마도 가끔씩 마주하는 거대한 사회적인 불행 앞에서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기가 어려워진 탓도 있을 것이고, 시대적인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도파민이 절여진 뇌를 갖고 아보하를 추구하는 아이러니한 인생이라니.



최근 극장에서 재개봉한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속의 주인공 '마츠코'의 총천연색 불행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에 이렇게 요란한 불행이 또 있을까. 영화에서는 눈부신 원색의 화면, 뮤지컬처럼 튀어나오는 노래와 춤, 때로는 희극 같고 때로는 만화 같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모든 화려함 뒤에 숨겨진 것은 한 인간의 끝없이 추락하는 삶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츠코'. 어떻게 이렇게까지 인간이 처절하게 망가질 수가 있을까. 영화를 보고 있자니 쓴웃음과 눈물이 뒤섞인다. 화려한 불행, 우스꽝스러운 비극. 그것이 곧 마츠코의 이름이자 그녀의 인생이다.


마츠코의 삶을 관통하는 건 단 하나다. "인정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으나, 늘 아픈 동생에게 관심을 빼앗겼다. 그 공백은 어른이 되어서도 메워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중학교 교사가 되어 학생에게 애정을 쏟다가, 그릇된 애정에서 비롯된 오해로 오히려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쫓겨난다. 이후 그녀는 남자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번번이 배신당하고 버려진다. 매번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사랑을 좇는다. 사랑은 그녀에게 구원인 동시에 파멸의 불씨였다.


영화를 보며 나는 불편했다. "왜 저렇게까지 사랑을 구걸할까." 하지만 어쩌면 그건 내 안에도 있는 갈증일지도 모르겠다. 인정받고 싶어서, 혼자가 되기 두려워서, 내 마음을 깎아내며 타인의 기대에 맞춰본 순간들이 떠올랐다. 마츠코의 선택들은 과장되어 보이지만,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걸었던 길의 극단적 버전이었다.


영화의 제목은 잔혹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과연 혐오스러운 건 누구일까. 그녀의 삶을 구경하는 관객일까, 끝내 그녀를 끊임없이 버려온 세상일까. 마츠코는 자기 파괴적인 선택을 반복했지만, 그 근원에는 단순한 소망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인간적인 바람. 그녀를 ‘혐오스럽다’고 부르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두려워 감추고 살아가는 욕망을 마츠코가 드러내 보였을 뿐이니까.


마츠코의 죽음은 참담하다. 그러나 영화는 끝내 그것마저도 눈부신 색채와 음악으로 감싼다. 그녀가 끝내 붙잡지 못한 사랑은 허망했을지 모르지만, 그녀가 남긴 생의 파편들은 어쩐지 아름답다. 인정과 사랑. 사실 그것은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가장 단순하고 근원적인 욕망이 아닐까. 나 또한 일상 속에서 작은 인정 하나에 흔들리고, 사소한 무시에 상처받는다. 마츠코는 삶 전체를 걸고 그 욕망을 드러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웃게 만든다. 너무 과장되고, 너무 요란해서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불행을 노래하고, 파국을 춤추듯 살아낸 그녀의 일생은 끝내 혐오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눈부시게, 처절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빛났다.


평범하는 사는 게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100% 공감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인생을 늘 안정적이고 평범하게, 평균이자 보통으로만 살아도 되는 걸까. 때로는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욕망을 드러내고, 끝내 불완전한 채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진짜 '사는 것'이 아닐까. 마츠코의 일생은 요란한 불행이었지만, 동시에 최대치로 살아낸 인생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결코 혐오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눈부셨고, 서글펐고, 무엇보다 인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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