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나는 춤추는 걸 걸 좋아한다. 키가 큰 탓인지 뭘 해도 폼은 안 나지만 그러면 뭐 좀 어때.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기고 혼자서 흐느적흐느적 거린다. 내게 댄스 자아가 있는 걸 알게 된 건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였다. 20대에도 그 흔한 클럽 한 번 못 다녔던 터였는데 뒤늦게 '밤과 음악사이'라는 감성주점 혹은 헌팅포차라고 소개되는 곳에 빠져 매주 주말이면 그곳을 들락거렸다. 처음으로 맛본 그곳은 내게 신세계였다. 당시 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간 이후 나는 그곳에 매료됐고, 덩달아 춤을 출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장소에 흠뻑 빠졌다. 주말을 앞두고 있거나, 술에 좀 취했거나, 마음이 싱숭생숭하면 춤을 출 수 있는 어떤 곳에 가고 싶었고 그곳을 가지 않으면 왠지 화장실을 갔다 뒤를 안 닦은 사람 마냥 찝찝해졌다. 그래서 어떤 날은 혼자서도 갔다. 한 마디로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춤을 추기 위해서 손은 최대한 가볍게 했고, 가장 편한 복장을 했다. 오래 서서 내 딴에는 손과 발을 열렬히 써야 했고, 그러다 보면 땀을 철철 흘릴 작정이었기에 신발도 옷도 편해야 했다. 누가 보면 대단한 댄서 나셨네 하겠지만 그저 춤을 편히 추고 싶은 최선의 컨디션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였다.
그 이후에 춤을 좀 배워보고파서 여기저기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그래봤자 동네 문화센터에서 하는 줌바 수업이었지만 말이다. 한 번은 유우~명한 K-pop 댄스 아카데미에 갔다 학을 떼고 돌아오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온 듯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포함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칼군무를 하고 있는데, 내 오징어 댄서로는 도저히 명함을 내밀 수가 없었다. 대단한 댄서를 꿈꾼 것은 아니었고, 그저 한국적인 흥이 넘치는 한 인간에 불과했던 나는 그저 늘 박수 열심히 잘 치는 인간으로 살아왔다.
최근에 본 한 영화가 오랜만에 내 댄스 자아를 불러일으켰다.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는 밴드 '토킹 헤즈'의 40여 년 전 공연 무대를 실황으로 다룬 영화다. 요즘 대다수의 공연 실황처럼 인터뷰도, 설명도 없다. 오직 음악과 무대만으로 88분의 클라이맥스를 선사한다. 토킹 헤즈를 알고 있으면 좋겠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아마 보다가 토킹 헤즈의 팬이 되어버릴 테니까.
팔과 다리를 곤충처럼 흔들면서 무대 위를 삐걱삐걱 걸어 다니는데 그저 빠져버리고 말았다. 저게 과연 춤인가, 행위 예술인가. 그냥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했다. 그려면서도 발과 손으로 리듬을 타게 됐다. 어떤 장면에서는 관객석이 이상하게 술렁였다.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그리고 나를 완전히 무너뜨린 건 ‘게다리 춤’이었다. 어릴 적 어른들 앞에서 관심을 받고 용돈을 타기 위해 추던 그 게다리춤 말이다. 내 안에서 오래 묵은 댄스 욕망을 부활시켰다. 데이비드 번의 이상한 춤, 과장되게 큰 수트, 기묘한 표정들이 주는 어색함 등 묘하게 불편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불편함이 일종의 해방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몸을 흔들고 싶다"는 내적 욕망이 꿈틀거렸다.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저 그냥 느끼는 대로. 제목이 '스탑 메이킹 센스'인 이유도 왠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극장에 앉아서 다리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음료를 마시는 척 자연스럽게 상체를 움직인 체 했지만 사실은 은밀하게 노래에 맞춰 몸을 미세하게 흔드는 중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가까운 펍으로 가서 맥주 한 잔을 손에 들고 신청곡으로 '토킹 헤즈'의 'Life During Wartime'을 신청한 뒤 마음껏 흐느적거리고 싶다. 아마도 내 숨겨 놓은 댄스 욕망은 앞으로도 안전하게, 의자 위에서 계속 흔들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