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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위로

영화 '비긴 어게인'

by Ellie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시작’이 어려워진다. 한 땐 무엇이든 새롭게 도전해 보고 일단 부딪히고 보는 프로시작러였는데 나만의 컴포트존에서 벗어나는 일이 조금은 겁이 난다. 선택이 조심스러워지고 도전은 무모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익숙한 일상과 익숙한 사람들 뻔한 하루가 답답하게 느껴지면서도 무탈하고 안정되는 나만의 컴포트존으로 들어가 마음을 도닥인다. 아마도 잘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기에 복잡다단한 현실 앞에서 타협했고 마음도 조금은 쪼그라들었다.

시작은 몰라서 서툴고, 새로운 시작은 알기에 더 불안하다. 이직, 이사와 같은 새로운 시작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요소 중 상위권을 지키는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이다. 서너 번의 이직을 경험하면서 늘 이직 후엔 한동안 모두가 나만 보는 것 같아 불안했고 어느 땐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아 마음 졸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를 한 뒤엔 익숙지 않은 동선과 감각이 낯설어 꽤 오랜 시간 망설였다. 시작이라는 말은 설렘이란 감각과 어울리는 것 같지만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흔들림과 망설임이란 감각이 좀 더 앞섰다.

어쩌면 뉴욕은 ‘시작’하는 마음과 어울리는 곳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도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 이방인들이 오랜 꿈을 안고 발을 내딛는 도시다. 거리의 소음은 무성하고 사람들은 바쁘고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지만 누구에게라도 활짝 마음을 열어 주고, 누구라도 어딘가에 어울릴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꿈을 향해 돌진하고, 누군가는 그 꿈에서 미끄러지기도 한다. 사람들 간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그 무정한 도시는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의 새로운 시작을 보듬어준다. ‘비긴’ 혹은 ‘어게인’이 제일 어울리는 도시다.


영화 ‘비긴 어게인’ 속 배경은 뉴욕으로 영화에는 인생의 쓴맛을 맛본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남자친구가 메이저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뉴욕으로 오게 된다. 꿈꾸던 뉴욕에서 그렸던 남자친구와의 새로운 행복도 잠시, 오랜 연인이자 음악적 파트너인 남자친구 데이브는 이른바 ‘스타’가 되면서 변해버린다. 그저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이 좋았던 그레타는 달라진 남자친구를 보고 실망한 채 그를 떠난다. 가정에서도 소외받고, 스타 음반 프로듀서였지만 이제는 해고된 ‘댄(마크 러팔로)’은 맥주 한 잔 사서 마실 돈도 없을 정도로 바닥을 찍었다. 갈 곳 없는 어느 날 밤, 우연히 들른 뮤직바에서 그레타의 자작곡을 듣게 되고 오랜만에 머리가 지끈하는 촉이 발동한다. 이제는 과거의 영광만 있는 그저 그런 프로듀서지만 음반 제작을 제안하고, 대단할 것 없는 그들만의 거리 밴드를 결성해 뉴욕의 거리를 스튜디오 삼아 노래를 만들어 나간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어폰을 나눠 끼고 뉴욕의 거리를 걷는 장면이다. 그레타는 오래된 연인에게 배신당한 직후고, 댄은 일과 가족 모두에서 무너진 상태였다. 외롭고, 상처받았고, 아무것도 계획되지 않아 불안했지만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느낀 최악의 상황에서 어쩌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게 된다.

비긴 어게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레타는 시류에 편승한 사회적인 성공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한다. 비긴 어게인은 새로운 출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잠깐 멈춤에 관한 이해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출발점과 쉼표를 안고 살아간다. 가끔은 멈춰도 되고 새롭게 시작해도 된다. 중요한 건 자신만의 리듬이며, 기꺼이 다시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비긴은 ‘시작’이고, 어게인은 ‘다시’다. 실패했거나 멈췄거나 꺾였던 순간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를 찾아낼 수 있다는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영화 ‘비긴 어게인’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찬가’다.

다시금 시작을 하기 위한 마음을 품기에 이만한 영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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