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5월은 늘 그렇듯 ‘초록’이 말을 거는 계절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날리다가 다 떨어진 꽃잎이 아쉬워질 즈음이면 어느덧 무성한 초록이 우리를 반긴다. 연둣빛의 생기와 반짝거림에 눈이 부시다. 깔깔거리며 웃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경쾌하고 생기 넘친다. 초록의 계절이 시작될 즈음, 눈이 부시게 푸르른 숲을 그들만의 싱그러움으로 내달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 건너편 ‘매직 캐슬’에 사는 6살 꼬마 ‘무니’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꿈과 환상의 나라 디즈니 월드의 코앞에 위치한 이곳 ‘매직 캐슬’은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외형과 매직 캐슬이란 이름과 달리 싸구려 모텔촌이다. 특정한 거주지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곤층들이 아슬아슬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 흔한 미끄럼틀 하나 없는 이곳 모텔에서 무니와 친구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어린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어른들을 골탕 먹이고 도망치느라 뛰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뛰고, 맛있는 걸 먹기 위해 늘 뛰어다니는 무니와 친구들은 보고 있자니 ‘빈곤’이라거나 ‘생계’ 라거나 하는 현실감각을 자극하는 단어는 저만치 멀어 보인다. 버려진 콘도에 들어가 유령놀이를 하고, 부서진 팬케이크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고, 한 푼 두 푼 모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나눠 먹는 그들의 하루하루는 대단할 것 없지만 그들만의 모험으로 가득하다. 어른들의 눈에는 위태롭고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에서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안쓰럽지만, 무니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여전히 ‘매직(마법)’이 가득한 ‘캐슬(궁전)’이다.
시선을 조금만 더 넓혀보면 세상에 찌든 어른들의 그림자가 함께 비친다. 무니의 엄마 헤일리는 젊음의 혈기로 세상을 향해 돌진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매직캐슬에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모텔비며 끼니 걱정이 이어지는 현실과는 별개로 무니와는 여느 모녀와 다름없는 알콩달콩한 관계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싸구려 향수를 팔며 간신히 벌이를 하던 헤일리는 곧 모텔비마저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무니와 함께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으로 인해 무니와 함께 하던 세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세상 끝에 선 이들 모녀에게 닥친 냉정한 현실 앞에서 호텔 매니저 바비는 묵묵한 힘이 되어 주는 든든한 어른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의 생명체들을 뿌리내리게 돕고 가끔은 그늘이 되어 주기도 하는 나무 같은 존재다.
우리는 막 피어난 나뭇잎들의 싱싱하고 투명한 초록을 ‘신록’이라 부르고, 그 잎들이 깊어져 제자리를 찾아 깊어갈 때 ‘녹음’이라 한다. 둘 다 같은 초록이지만 신록이 시작의 모먼트라면, 녹음은 ~ing 하는 끈기와 용기다. 제 자리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햇살을 향해 도약하듯 피어나는 5월의 나뭇잎이 신록이라면 서로 엉키며 자라 무성하게 우거져 그늘을 이루는 나뭇잎들은 녹음이다.
우리에게 초록은 갓 피어난 새싹일까, 짙은 녹음일까. 아마 그 어디쯤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봄은 시작되고 무르익고 깊어진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