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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싶다

영화 '스프린터'

by Ellie

나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늘 평균 정도의 사람이었다. 공부도 일도 눈에 띄게 잘하지도 눈밖에 날 정도로 거스르는 일이 없었다. 특별히 못한 것도 없지만 월등히 잘한 것도 없었다. 성적은 평균, 성격도 평범, 회사에서의 내 위치도 무난한 사람 딱 그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에 꽂혀 맹렬히 부딪혀 본 적이 없다. 공부도, 일도, 취미도,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만하면 됐지”, “적당히 하자”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늘 튀지 않게 적당히 남들이 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경쟁에 익숙하지 않아 꼭 누군가를 이기고자 하는 경쟁심도 크지 않았고, 평균에서 벗어나길 꺼리는 안정주의자였다.

그래서였을까. 앞뒤 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누군가를 보면 낯설면서도 늘 부러웠다. 무언가에 꽂혀 맹렬히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면 ‘뭘 저렇게까지 하나’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묘하게 질투가 났다. 나는 무언가를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려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자문, 왜 안(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적당히 게으른 사람의 변명이자 핑계일 지도 모르겠다.



영화 ‘스프린터’에는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은퇴만 남은 신기록 보유자 ‘현수’, 최고의 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정호’, 한때 유망주였지만 팀 해체 위기에 놓인 ‘준서’. 아마도 30대, 20대, 10대의 나이인 그들의 각자의 이유로 ‘국가대표’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린다.

한 때는 신기록을 보유했지만 과거의 영광만 남은 무소속의 현수는 연습할 마땅한 운동장도 없고 코치도 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혼자만의 경기를 이어간다. 4등에 머물러 있는 현수는 이미 30대에 접어들어 어쩌면 육상 선수로서는 물리적인 한계에 이르렀지만 조금만 더 하면 3등이 될 것 같다. 1등은 됐고 딱 3등만 하면 되니까, 딱 1명만 제치면 되니까. 20대인 정호는 이미 1등이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고 했던가. 1등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불법의 스테로이드제를 몰래 투약하는 위험한 선택을 하고야 만다. ‘한 때 유망주’였던 준수는 1학년 기록에 머물러 있다. 정체된 성적으로 인해 육상부 해체 위기에 놓인 가운데 코치와의 관계에서도 딜레마에 빠진다.

그들은 각자의 고민과 갈등과 결핍, 희망과 불안, 미련 안에서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한다. 그다음이 국가대표일지 아닐지, 도핑테스트에서 걸려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을지, 국가대표 그다음은 무엇일지 알 수는 없다. 비록 해피엔딩이 아닐지언정 각자의 트랙 안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끝끝내 최선을 다해 달렸기에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흔히들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스프린트(단거리 주자) 구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느긋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지치지 않도록 오래 달리는 일이 중요하겠지만, 인생에 한 번쯤은 아무 계산도 없이 끝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려봐야 하는 것이니까. 그 순간에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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