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재흥 Feb 04. 2016

끝과 시작

졸업

형, 안녕!

한동안 바빴어. 아니 바빴다기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어. 이런저런 분주한 일들이 여유를 앗아갈 때 있잖아. 지난 이삼 주가 내겐 그런 날들이었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 더러는 신나는 일들이었고 더러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억지로 해야 하는 일들이었지. 하고 싶은 일들만 하며 살 수도 없고, 하기 싫은 일들만 연속적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공평한 나날들이었던 것 같아.


어제는 우진이가 고등학교 졸업을 했어. 물론 졸업식장엘 다녀왔지. 4년 전에 예진이가 졸업한 그 학교 그 장소에서 우진이의 졸업식을 보고 있자니 색다른 맛이더라구. 예진이와 우진이는 중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남매인 거지. 우리가 자랄 때는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지.  딱 한 번 있을 뻔하긴 했네. 형이 졸업한 학교를 내가 졸업할 뻔한. 형이 대방초등학교에 졸업한 그 해에 난 그 학교에 입학을 했었지. 한 학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내가 부산 봉학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었잖아. 이모 댁에 맡겨진  그때...


1972년 2월의 어느 날이었겠지? 형이 졸업한 날 말이야. 형과 엄마가 함께 찍은 낡은 사진을 내가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놀랍지? 그 사진을 가끔 꺼내보곤 하는데  그때가 형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때였던 것 같아. 번영과 몰락이 대칭되는 이등변삼각형의 꼭짓점이었던 셈이지.

엄마의 롱코트와 악어가죽 핸드백에 담겨진 세련미.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자전적 소설 <나의 투쟁 1>에 이런 대목이 나오더라구.

겉으로만 보면 번영과 몰락의 극점은 서로 너무나 닮아 있다. 적어도 번영과 몰락이 내포하는 극단적 혼란, 엄격한 규제라는 요소를 두고 보면 그렇다. 이들 두 요소를 가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전부일 수 있다.

그 '극점'은 굳이 번영과 몰락이라는 거창한 명제가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항상 맞닥뜨리는 것 같아.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 처음 마주치는 햇살 혹은 바람 혹은 이웃집 사내처럼. 필연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는 만남.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만남. 그 만남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그다음 벌어지는 일을 겪은 다음에야 그 만남이 있었음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따뜻하다, 서늘하다, 낯익다...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끝은 아쉬울 뿐야. 어제 졸업식에서 우진이도 그런 생각을 했겠지.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들을 하지만 그 둘은 동일 선상에 놓여있을 수는 없겠지. 끝은 매듭이고 매듭은 정지하는 것이니까.


우진이에게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주민등록증이 나왔고 곧 군대 갈 생각을 하고 있는 우진이도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굳이 아비로서의 훈계 같은 건 하질 않았어. 이제 스스로 느끼고 경험하면서 삶을 개척할 때가 된 거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진이 역시 끝은 시작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할 거라 믿어. 그동안 수많은 작은 시내를 건너왔고 이제 제법 굵은 강을 건너 바로 눈앞에 무한히 펼쳐진 바다를 보았을 테니까 말이야.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겠지.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형과 누나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우진이에게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맡기고 싶은 거야. 인생은 바로 네 것이다, 하고 말이야.


어제는 그저 카메라 셔터 눌러주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했지. 물론 같이 폼 잡고 사진도 찍었구.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는 늙어가고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해. 그런 생각을 하면 자꾸 쓸데없이 뒤를 돌아보게 되니까.

아버지와 아들. 의도하지 않아도 닮아있는 피.

요즘 졸업식장에서의 아이들은 명랑하더라구. 졸업식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아서 그저 한 의식으로서의 색깔이 짙었어. 모든 게 졸업식장에서 끝나더라구.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의 이별의 정을 나누는 시간 정도는 있는 게 좋은데 말이야. 졸업식이 끝난 후 우진이는 교무실로 가서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이별의 포옹도 나눴는데, 글쎄 이 녀석 선생님과 포옹을 마치자 울컥하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더라고. 덕분에 나도 뭉클했구... 졸업, 하면 눈물이 어울리잖아.

이 사진을 찍고 우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그래서 말인데, 졸업과 관련된 노래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졸업, 하면 이 노래가 생각나. 아직 내 정서엔 '졸업'과 '눈물'은 외따로 떨어질 수 없는, 피붙이라는 생각에서 연유된 것이겠지. 형과 나처럼. 무슨 노래를 말하는지 눈치챘겠지?맞아. 진추하(陳秋霞)의 'Graduation tears'.

https://youtu.be/DCOn65731Wk

<Graduation tears>


And now is the time to say good bye to the books

And the people who have guide me along

They showed me the way to joy and happiness,

My friend, How can I forget the fun we had before,


I don't know how I would go on with out you

in a wicked world …

I'll be all alone,

l've been blessed by school life,

Don't cure about a thing,

Got ta thank our teachers and my friends,


Graduation tears Congratulation Cheers,

It''s the day of my emotion,

Can't you see

Who'd know the friend ship and love l'll leave behind

As l step out of the school yard l have known


I don't know how I would go on with out you

in a wicked world …

I'll be all alone,

l've been blessed by school life,

Don't cure about a thing,

Got ta thank our teachers and my friends


무엇보다 이 노래는 형과 내가 공유했던 노래라는 점이 아직 졸업 노래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겠지...


오늘이 입춘이야.

형, 봄이 오고 있어. 봄이... 겨울은 끝이고 봄은 시작이겠지?


2016. 2. 4. 형의 사랑하는 아우.



매거진의 이전글 잊을 수 없는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