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현대사 속 아프간 여성의 삶, 책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이 글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스포일러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보실 때 주의해주세요!*
약 70년 전 일어난 한국전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다. ‘전쟁’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민족들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깊은 골이 생긴다는 것을.
폭력에 의하여 무참히 파괴된 생명. 의지할 곳도 나를 이끌어 줄 사람도 없는 막연함. 불행한 현재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모두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다. 마음 둘 데 하나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 공포가 사람들의 의식을 갉아먹는다.
유명한 작품들은 계속 리메이크된다. 작품의 장르와 무대, 출연자만 바뀌고 계속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어쩌면 전쟁도 이런 작품과 비슷할지 모른다. 전쟁터란 무대가 바뀌고, 누가 총부리를 겨누게 되는지 누가 이번엔 총을 맞게 되는지 연기자들만 바뀔 뿐이다. 안타깝게도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 약하고 힘없는 자들이 이유 없이 죽어간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 시기의 아프가니스탄은 외부의 침입과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 선택지는 단 두 개뿐이었다. 해외로 망명하여 난민이 되는 것. 전쟁터인 나라에 머물러 국민이 되는 것이다.
결말부터 이야기하자면 아프가니스탄에 남았던 사람들은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나라를 떠났던 사람들은 난민으로 전락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바로 이 비극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여성 ‘마리암’과 ‘라일라’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거의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거대한 장편 소설이다. 앞도 되는 페이지 만큼 촘촘한 구성을 갖고 있다.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마리암의 유년시절, 2부는 라일라의 유년시절 이야기이다. 3부부터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4부는 마리암의 마지막 이야기와 라일라의 후일담이다.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태어났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그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기회가 좋아 비극을 탈출했던 그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큰 회의감에 빠진 모양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받는 민족, 그중에서도 최하층의 약자. 여성에 대한 연민과 관심으로 이 소설이 태어난 듯하다. 하지만 단순한 연민이 아니다. 약자들의 연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프간 여성의 강인함을 그려낸다.
‘하라미(사생아를 비하하여 일컫는 말)’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리암은 다섯 살이었다.
-9쪽
마리암은 가난하고 아버지와 매일 같이 살 수 없지만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녀에게는 삶의 멘토가 되어주는 파이줄라 선생님이 있었고, 툴툴거리지만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엄마 나나가 있었다.
그런 그녀의 삶이 깨어지는 것은 잘릴의 실체를 알게 된 날이었다. 마리암이 잘릴의 집을 몰래 방문하고 돌아온 날,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엄마의 주검뿐이었다.
그 후로 마리암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잘릴의 정부인들은 마리암을 치우듯이 머나먼 마을 카불의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판다.
라시드는 마리암의 나이의 두 배는 많은 사람으로 심지어 초혼이 아니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마리암에게 염증이 난 라시드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제는 마리암의 삶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고 종교와 민족의 분쟁 속에서 내전이 발발된다. 그 어느 날, 카불에서 로켓포가 떨어진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다네
-259쪽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카불 시내는 온통 잿더미로 변한다. 그 비극의 한가운데 라일라가 있었다.
아픈 어머니를 데리고 아버지와 카불을 떠나려는 날, 마리암의 이웃 소녀였던 라일라는 모든 것을 잃었다. 소꿉친구이자 연인인 타리크는 난민이 되어 소식이 끊긴 지 오래였다.
연인은 생사를 확인할 수 없고, 가족도 로켓포에 모두 사라졌다. 희망조차 없는 고통 속에서 라일라는 라시드의 두 번째 부인으로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라일라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못했다. 라일라의 뱃속에서 아지자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마리암의 마음이 눈 녹듯이 풀린 것은 이 아지자 덕분이었다. 아이를 가질 수 없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던 마리암은 아지자를 키우며 자신의 슬픈 과거를 치유했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라시드의 부인이 아닌 아프간의 여인으로서 연대했고 마침내 가족이 된 것이다.
집 밖의 세계는 난장판이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무수한 여인들이 유린당했다. 이와 더불어 라시드의 폭력은 마리암뿐만 아니라 라일라에까지 퍼졌다.
그 사이 라일라는 두 번째 아이를 가졌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 여겨진 라일라는 카불을 뜰 생각을 하게 된다.
카불을 떠나기로 한 날, 마리암과 라일라는 가슴 속에 늘 묵혀두었던 옛이야기들을 서로 이야기했다.
서로의 상처를 꺼내어 내보인 순간, 그것은 그 한 사람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아프간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슬픔. 마리암의 슬픔을 라일라가 이해했다. 오직 라일라만이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었다.
마리암은 불현듯 파이줄라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하지만 마리암,
그것들은 심으시는 분들은 신이시다.
네가 그것들을 가꾸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그분의 뜻인 게야.
-345쪽
가장 낮은 약자들이 연대했고, 강자인 라시드, 아프간의 관습, 전쟁과 폭력의 시대들이 움츠러들 때가 왔다. 그들은 더는 폭력에 스러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과연 마리암과 라일라는 무사히 행복을 쟁취할 수 있게 될까? 라일라와 타리크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결말의 내용은 직접 읽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이 놀이에서는
남자아이의 이름만이 거론된다.
딸의 이름은 라일라가
이미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563쪽
이솝 우화 중 <북풍과 태양>이란 이야기가 있다. 북풍과 태양이 서로 힘자랑을 하면서 지나가는 나무꾼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하게 되었다.
북풍이 거센 바람으로 나그네를 괴롭혔지만, 나그네는 오히려 외투를 굳게 잡았다. 그러나 태양이 따스한 빛을 비추자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다. 흔히 말하자면 북풍은 강자이고 태양은 약자일지 모른다.
책에서 말하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말 그대로 카불의 휘황찬란한 모습을 그리는 것 일 있겠다.
하지만 차도르에 가려진 아프간 여성들의 진실한 두 눈과 부드러운 강인함, 연대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이 연대한다면 진실로 강자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563쪽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 그러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긴 호흡에는 이유가 있다. 생각하고 이해하려 하지 말고, 마지막의 감동과 여운을 가슴으로 직접 느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