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우리 가족이 출석 중인 캐나다 한인교회에서 남편에게 짧은 강연을 부탁해 오셨다. 천상 문과인 나는 이공계 용어는 맨날 들어도 까먹는다. 그래서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요는 인공지능 뭐시기 분야의 종사자로서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십사 하는 내용이었다. 한인교회에서 이래저래 도움을 받고 있던 터라 어떻게든 보은 하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였다.
나도 아주 중직을 맡았다. 바로, 피피티 넘기기. 물론 이마저도 부부가 손발이 안 맞아서 환장의 호흡을 보여드리고 말았지만(그는 내 탓을 했지만 나에게는 명백한 기기상의 오류가 있었음을 입증해 줄 증인이 있다), 다행히 다들 어여삐 봐주신 덕에 무사히 강연을 마칠 수 있었다.
육아하는 엄마들만 걸리는 마법이 있다. 애 보는 거 외에 다른 건 죄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마법이다. 육아가 고될수록 마법의 힘은 강력해진다. 캐나다에 온 후로 하루에 거의 22간씩 애들과 꼭 붙어있는 나는(한 시간은 애들 낮잠, 한 시간은 운동 시간이라 뺐다. 참고로 우린 밤에도 꼭 붙어 잔다), 웬만해선 풀리지 않는 초강력 마법에 걸려 있는 상태이다. 그 덕에 평소라면 학을 뗐을 이공계 학문도 이 날은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흥미로웠다고 해서 이해를 잘했다는 뜻은 아니다. 내용 중 반은 뭔 말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고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인상 깊었다. (다음의 내용은 인공지능의 이응도 모르는 문대생의 요약본이므로 큰 기대는 말아 주시길...)
인공지능이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어떤 일을 예측하는 거라고 한다. 예를 들어 판매자는 자신의 상품이 얼마나 팔릴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야 물량이 부족해서 소비자들을 기다리게 만든다거나 재고가 남아돌아 손해 보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인공지능이 사용하는 모델이 너무 단순하면 정확도가 떨어져서 쓸모가 없다. 이런 걸 under-fitting이라고 한단다. 그럼 어떠한 변수도 파악할 수 있게끔 모델을 복잡하게 만들면 될까? 하지만 이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모델이 아주 복잡하면 어떤 특정 상황에는 딱 들어맞을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여기에서 벗어난 패턴에는 오히려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나의 체형에 맞춰 미세하게 조정된 옷을 다른 이가 편하게 입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걸 over-fitting이라고 한단다.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수익을 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옷이나 딱 한 사람에게만 맞춰진 옷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적당히 들어맞는 기성복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건 under-fitting과 over-fitting의 사이에 있는 모델이라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이 인간의 심리적 적응과도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수많은 일을 미리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서 최대한 많은 변수를 예상해 보고, 모든 상항이 대처할 수 있도록 대비한다. 자신이 대비한 게 잘 들어맞으면 만사오케이겠지만, 문제는 현실에선 통제 불가능한 일들이 무지기수로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오히려 먹통이 되고 만다.
반면 될 대로 되라며 under-fitting 모델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정확도가 심히 떨어지는 경우도 실생활 적응 능력이 떨어진다. 본인이야 워낙 욕심도 없고 걱정도 없어서 타격감이 적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적응 실패로 인해 함께 피를 보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결국 인간도 인공지능도 모두 적당히 복잡하고 적당히 느슨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일상생활에 무리 없이 적응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약간 over-fitting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연년생 변수들을 기르면서 내가 가진 모델은 아주 고운 가루가 되도록 빻이고 빻이는 중이다. 계획표 없이 못 살던 나인데 요즘은 세상에 계획만큼 쓸모없는 게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ver-fitting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계획표는 써본 적도 없는 것 같은 under-fitting 남편과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다.
결국 대부분의 심리적 적응이 그러하듯 이것도 균형이 중요한 것 같다. 정확성을 높이고자 노력하되, 적당한 느슨함으로 수많은 변수들을 넉넉히 받아들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