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하는 시간
“우리 코티지에 놀러 올래? 부모님이 너희 가족을 초대하셨어.”
마치 친구들에게 생일 파티 초청장을 보내듯 설레는 눈망울로 내니가 말했다.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든 내니는 코티지 이야기를 할 때면 여름 방학을 기다리는 초등학생처럼 늘 기대에 차 있었다. 본래 코티지(cottage)는 작은 오두막을 뜻한다. 그런데 호수가 많은 캐나다에서는 주로 호숫가에 있는 별장을 코티지(cottage)라 하고, 그 밖의 것들은 캐빈(cabin)이라고 부른다.
그간 사진으로만 봤던 코티지는 어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푸른 호수가 내다 보이는 창, 잔잔한 물결에 넘실대는 작은 보트, 햇볕을 머금은 채 물가로 뻗어 있는 나무 데크, 그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마침 최근에 읽은 캐나다 작가의 소설*에서도 토론토 근처의 호숫가를 배경으로 삼고 있었기에, 코티지에 대한 나의 기대는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 Carley Fortune, <One Golden Summer>. 내니의 추천을 통해 읽게 된 가벼운 로맨스 소설.
“물론이지! 초대해 줘서 고마워.”
반쯤 잠에 취해 부스스 일어난 아이들을 태우고 아침 일찍 코티지로 향했다. 굽이진 길을 지나면서도 그저 별 다를 것 없는 여름날의 짧은 휴가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티지에서의 그 하루를 "One Golden Summer"로 간직하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우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풍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거실 한 면을 차지한 통유리창 너머로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정오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창을 마주 보며 기역 자로 자리한 소파에 앉자, 마치 갤러리의 중앙에서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렇게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건축물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도 경험했었다. 자연을 담아내고자 했던 가우디의 작품처럼, 이 집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한 순간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복층 건물은 원래 내니의 조부모님 소유였으나 내니의 아버지(가칭 T)가 다시 매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안팎 모두 수리를 거쳐서 마침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유명한 자동차 회사의 엔지니어였다는 코티지의 주인은 탁월한 미적 감각과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가구의 색상, 디자인, 질감, 내구성까지 모두 T의 검수를 거친 뒤에야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다못해 세면대 옆에 놓인 핸드타월, 물기를 제거하는 작은 도구까지도 집의 전반적인 색조를 해치지 않았다.
이 가족에게 코티지는 휴가철에나 잠시 왔다 가는 별장이 아니었다. 일 년에 삼 분의 이 이상 이곳에서 머물고 있으니 본거지나 다름없었고, 오히려 토론토 시내에 있는 작은 셋집을 임시용 거처로 삼는 것 같았다. T는 일찍이 본업에서 물러난 후 학교의 축구 코치와 투자업을 병행하며 코티지 관리에 힘써왔다고 한다. 35년 간 교직에 있다가 얼마 전에 모두의 축하 속에 명예롭게 은퇴한 내니의 어머니(가칭 S)도 코티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티지는 황혼기에 접어든 부부뿐 아니라 한창 뜨거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그들의 두 딸에게도 가슴이 두근 거리는 공간이었다. 여름이면 호수에 풍덩 뛰어들어 수상 스포츠를 즐기고, 겨울이면 스노 모빌을 타고 설경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들이 만든 공간은, 그들의 시간을 만들어 냈다. 포근한 소파로 둘러 싸인 아늑한 패밀리 룸에는 가족이 함께한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낮은 수납장 안에는 각종 보드 게임과 숨은 그림 찾기 책, 그리고 간단한 미술 도구들이 있었다.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며 시범을 보이는 모녀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의 빠른 손놀림에서 얼마나 자주, 오랫동안 이곳에 둘러앉아 놀이를 했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 세월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은 소품들은 빛이 바래고 귀퉁이의 칠이 조금씩 벗겨져 있었지만, 어디 하나 함부로 다뤄진 구석은 없었다. 생명이 없는 물체인데도 마치 소중히 여김을 받고 자란 사람처럼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났다.
심리 전문가인 내가 심리보다 더 강조하는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외부의 요소들, 이를테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공간이 그러한 것이다. 마음을 돌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막상 실천하려면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쉽다. 그보다는 심리에 영향을 미칠 만한 외부의 대상들을 잘 가꾸는 것이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매일 보고 듣고 만지며 경험하는 것들을 재료 삼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빗대자면, 마음의 상태는 자신이 매일 앉고 눕고 시간을 보내는 공간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공간은 단 한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족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코티지를 가꾸었을 주인의 수고와 정성이 결국 그 가족만의 문화와 추억을 만들었다. 슬프게도 한국의 많은 가족들은 한 지붕 아래에서 숨 쉬고 있을 뿐 저마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느라, 미래에 좋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공부하느라, 바깥에서 진을 다 빼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결국엔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체력도 남지 않게 된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 하나 그런 고된 삶을 살더라도 다른 몇몇이 함께하는 공간을 지키고 있다면, 가족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같이 놀아본 적이 없는 가족은 아무리 한가해도 한 곳으로 모이지 않는다. 한 지붕 아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족이 함께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코티지에서 느낀 감정들 중 하나는 부러움이었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 같은 호수가, 이토록 멋진 공간이, 이곳을 가꿀 수 있었던 그들의 재력과 시간과 안목이 부러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러웠던 것은 가족이 진정으로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란, 천혜의 환경처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