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랫집에 사시던 어르신들은 아이들을 무척 예뻐해 주셨다. 등하원길에 아이들을 만나면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고, 한동안 꽤나 시끄러웠을 떼쓰고 우는 소리에도 그저 아이들 소리라면 다 예쁘다고 해주셨다. 그런 마음이 고맙고도 죄송해서 뵐 때마다 "저희 아이들 때문에 너무 시끄러우시죠"라며 사과를 드리곤 했다. 그럼 인자한 미소와 함께 괜찮다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왔구나 싶어서 오히려 반갑다고 격려해주시곤 했다. 나는 참 인복이 많다고 느끼며 살았는데, 그 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물려준 것 같아서 든든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르신들께서 이사를 가셨다. 깊은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며 가며 사람 냄새를 물씬 느끼게 해 주신 분들이었던지라 가신다니 좀 서운했다. 어르신들이 떠나신 후 아랫집은 도배며 입주 청소며 새 단장을 하느라 바빴다. 누가 이사를 오려는 것 같았다.
사실 새 식구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행여나 층간소음으로 불화가 생기진 않을까 싶어서이다. 나와 남편 모두 바닥에 매트를 깔아놓고 애들한테 잔소리를 해대며 부단히 조심시키지만, 그래도 아직 두 돌 안 된 막내는 말귀를 반만 알아듣는 데다가 건물 자체도 오래된지라 소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는 우리 윗집에서 났던 소음이 서너 층 아래까지 전달돼서 괜히 오해를 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 나와 남편은 첫 아이를 낳자마자 몸조리 차 친정에서 머물던 중이라 집을 오래 비워둔 상태였다. 이 상황을 입주민 전체 단톡방에 알림으로써 오해는 풀렸지만, 구축에서 층간 소음은 더더욱 민감한 문제라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아이들에게도 설명해 주며 발걸음을 조심시키고 있다. 말했다시피 아직 말귀를 반만 알아듣는 막내에게는 "삐뽀삐뽀 경찰 아저씨 오시네"라며 공권력까지 동원해야 하지만... 여하튼 사력을 다해 발걸음을 단속하는 중이다.
다행히 첫째는 둘째보다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여차저차해서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사 가시고, 새로운 집이 이사 왔어~"라고 설명해 줬더니 다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두 눈을 땡그랗게 뜬 채 해맑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집이 이사를 어떻게 와요? 집은 발이 없는데?
아차차... 우리 첫째도 아직 말귀를 반만 알아듣는 걸로... ㅎㅎ 연년생 동생이랑 붙어 있어서 의젓해 보일 뿐 너도 아직 너무너무 귀여운 아가인 걸! 엄마가 자꾸 잊어버리네.
여하튼 엊그제는 발도 없이 용케 이사를 오신 아랫집 새 식구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인복이 뭐 별 건가? 사람 사이를 잘 가꾸어 가면 그게 복이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