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0.
13년 간의 시리아 내전이 끝을 맞이하며 시리아의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자유를 즐겼다. 그들은 오래된 독재자의 동상을 파괴하고, 독재자의 얼굴을 찢고, 독재자의 체제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교정 시설과 감옥, 고문 시설들을 파괴했다. 그곳에는 자유를 위해 싸우다 감옥에 들어간 수많은 청년들의 피가 있었다. 독재로 인해 어머니들은 아들을 잃었다. 어떤 이는 삼촌을 잃었고, 아버지를 잃었다. 독재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살을 먹어야만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들이 더욱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수록 그들이 만든 업보 또한 끝없이 많아진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38만 명이 넘는 자국민 사상자가 발생하고, 젊은 청년들은 군인 또는 반군으로 총을 쥐고 젊음을 보내야 했다. 절대적 권력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핏값을 요구한다. 독재자는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가. 그들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시리아뿐만 아니라 여러 산유국 독재자를 후원해 왔다. 러시아와 중국은 달러와 페그 되는 석유를 비롯한 자원 전쟁에 대한 전략으로 여러 산유국들의 독재 정부를 후원하고, 그들에게 자원을 공급받는 전략을 오래전부터 택해왔다.
대표적 사례는 올해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라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번에도 니콜라스 마두로가 당선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펼쳐졌다. 야권의 대표 주자였던 마차도는 90%라는 압도적 지지율을 받았지만 법원에 의해 출마가 금지됐고, 그뿐 아니라 야권의 여러 인물들과 관련자들을 모조리 구금시켜 버리고 있다. 대선 전에 이미 강력한 상대 후보 및 그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넣어버릴뿐더러, 선거 자체도 부정 선거로 치러졌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출구조사 결과 야권 65%, 마두로 31% 지지율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정부와 서방 언론들을 일제히 비판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은 또다시 재임에 성공한 마두로가 되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독재를 일삼으며, 정적이 될 모든 이들을 감옥에 넣어버리는 것은 만국의 독재자가 공통적으로 보인 행동이다.
한국에서도 독재는 있었다. 어떤 이는 독재가 필요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독재를 극렬히 반대한다. 역사와 정치의 어느 편에 있던 상관없이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은 독재의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의 피가 많이도 떨어졌다는 점이다. 한국의 독재 시절에 있었던 수많은 고문과 감금은 모두 범죄자들에게만 행해졌는가?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독재 국가들의 사법 시스템, 정부, 정보부 등에서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체제 유지를 위함이지 민간인을 제대로 분류하지도 못할뿐더러, 애초에 그럴 목적도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평화 시위가 아닌 폭력 시위와 파괴 행위를 막기 위한 대응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이중첩자와 기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분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역사가 아무리 지나도 정확히 서술할 수 없다. 명분을 위해 명분을 만들기도 하는 것은 깡패들이나 개인이나 조직이나 국가나 다 동일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사라예보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에서 시작된 것처럼, 총을 누가 먼저 쐈는지가 아닌 그 과정에서 누가 피를 흘렸고, 누가 명예를 얻었으며, 누가 부를 쟁취했는가가 더욱 중요했다.
자본주의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맛있는 빵을 빵집에서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빵집 주인의 자비 때문이 아니라 빵집 주인의 돈을 벌기 위한 마음에서 나온다." 자본주의는 각 구성원이 개인의 이득을 향해 나아갈 때 서로 경쟁하도록 만들어졌기에 결과적으로 모두가 끝없는 쳇바퀴를 돌지만, 동시에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철저히 파괴하거나 기만하거나 이용하거나 사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가장 거대한 자금은 무기를 통해서 국가 사이를 넘나들고, 사람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는 온갖 상품들은 언제나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된다. 헐값에 사들인 사실상 노예와 다름없는 국민들의 노동으로 권력자가 춤을 추는 세상을 그들은 만든다. 오래된 권력이 부패하고 썩어가 악취가 진동하고, 권력으로 생명줄을 연장하는 각 국가의 독재자들은 결과적으로 권력의 노예가 된다.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서는 내일 눈 뜰지 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삶이 독재자의 말로이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되는 저주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모두를 적으로 두고 최후를 맞이한다.
아랍의 봄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 오고 있다. 이미 도래한 봄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생명이 싹이 트는 과정에서 성장통도 수반할 것이다. 봄이 온 국가가 푸른 나무처럼 거대해지기 위해서는 국가의 시민들이 계몽되어야 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며,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고, 서로가 끊임없이 견제해야 하는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어야 한다. 이 과정은 때론 독재보다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고, 무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타락을 막는 역사상 유일한 길이었다. 인간은 철인이 아니다.
아랍 국가들이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을 보며 더 많은 국가들은 도전받고, 자유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아직 자유가 오지 않은 국가들을 지도에 색칠해 보면 한 없이 많다. 말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악취가 나는 국가들이 가득하고, 자발적으로 국민들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 사는 이들도 가득하다. 세상은 이토록 비참하지만 동시에 자유가 도래한 나라들은 아비규환을 한 번도 생각할 필요 없이, 살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이 세상의 창조주가 있다면 창조주는 월스트리트에 있지 않을 것이다. 백악관이나 고급 휴양 시설에 머물 이유도 없다. 메시아라 불렸던 예수,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한 싯다르타, 선지자 무함마드 모두 가장 누추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사람들이 거지라 부르고, 역겨운 인간이라 멸시하는 이들을 향해 갔던 이들이었다.
오래된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이들은 무너진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완성된 곳에는 다시 지을 것이 하나 없다. 황폐하고 버려진 땅과 무너지고 좌절한 사람들은 우리 곁에 있다. 봄을 가져오는 것은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세상을 뿌리부터 바꿔보겠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이고, 우리가 세운 모든 것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먼저 흘린 희생의 토양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