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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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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Dec 12. 2024

약속

2024. 12. 12.

어제 마신 커피와 밀크티 덕분일까. 늦은 밤이 되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은 일찍 잘 이유도 없지. 가장 빠른 일정이 오후부터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만 막상 많이 보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 난 그게 문제였다. 적당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면서도 정말로 원하는 것은 손에 쥘 생각을 못하는 머뭇거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내가 싫어하는 것. 아주 시끄러운 음악. 과할 정도로 꾸겨 넣는 음식. 심각한 자기모순. 그리고 형식상의 행동들. 


그래서일까. 선명한 호불호는 나에 대한 이해도 만들었고, 동시에 누군가를 가까이하기 두렵게도 만든 것 같다. 나는 아주 선명한 사람이라 내가 좋아하던 이들 속에 어쩌면 있을지 모르는 싫어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살아간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약속을 했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약속을 했었다. 농담처럼 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진심이었다. 그래. 우린 서로에게 약속을 했었구나. 아차 싶었다. 항상 그 약속을 지키는 방향으로 살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잊은 것처럼 살고 있었다는 걸.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것이 약속을 믿어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의 보답이다. 내 삶이 표류하던 시절에 나를 잡아주었던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나 누군가의 헌신도 아닌 그들에게 내가 한 약속 때문이었다. 그들이 내게 준 믿음에 대해 보답한다. 그게 내가 바라는 일이다. 


아직까지 주저했던 모습이 보였다. 나에겐 솔직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살아오면서 그런 순간이 참 많았다. 알게 모르게 즐거웠던 추억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고생한 일들만큼이나 빛나는 순간도 많았었구나. 특별히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고, 함께 즐거워하는 순간들이 많기도 많았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참 미워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 있지만, 그들과도 한 때는 많이 웃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그들을 너무 좋아한다고 다른 이들이 오해하기도 했다. 그만큼이나 가깝게 허물없이 지냈는데, 정작 우리 사이엔 아무런 일도 없었고, 서로에게 아무런 그 이상의 기대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나의 인생은 여러 색이 섞여 엉망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좋았던 기억이 많다는 게 놀랍다. 사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와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맺다가 헤어졌다는 것은 헤어지기 전까지 긴 시간 동안 서로에게 좋은 추억이 많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내가 상처받은 것이나 상대에게 미운 감정들. 실망한 것들. 그것들만 돋보기처럼 크게 보며 최악의 인간으로 상대를 대한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나도 똑같은 놈이었다. 


내가 한 약속들. 나를 믿어준 분들과 한 약속들. 부모님에게 한 약속들.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 한 약속들. 그리고 그 약속까지도. 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간 달성하겠지 하는 막연함으로. 의례, 인사치레 하는 말 정도로 가볍게 나 역시 여겼나 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형식적인 태도로.


그래서 나는 약속을 지켜볼 생각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한 약속부터. 온 힘을 다해 지켜볼 생각이다. 그 약속은 나와 OO과의 둘만의 약속일지 몰라도 내가 지킨다면 나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리고 OO을 만나도 자랑스러울 것 같다. 아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약속 지켰는데, OO 씨는 지켰나요?" 하며 빙긋이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을 현명하게 쓰고 싶다. 나에겐 해낼만한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 이 시간과 이 에너지와 이 건강함이면 변명할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변명할 것이 없는 상황에 놓인 나. 쪽팔릴 짓은 하지 않고자 한다. 아직까지 살아온 방식을 너머,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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