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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Dec 17. 2024

복기

2024. 12. 17.

늦은 밤까지 과거의 수를 복기해 보았다. 나에게 다른 경우의 수가 있었을까. 


복기를 해보면서도 딱히 더 나은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열릴 상황에 대해서는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하나마나한 복기였을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결론지을 수 있었던 과거는 옵션을 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수에게 의존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이들과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플레이를 했어야 했다.


나는 사람을 신뢰하는 편이다. 그들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믿음이 무너질 때 타격이 크다. 사람은 누구나 배신을 한다. 작건 크건 말이다. 기업을 운영한다면 배신도 경우의 수에 넣어야 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배신이건 시장에 대한 배신이건.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유리한 길을 택하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에 배신을 옵션에 두지 않고 신뢰만 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도 있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많은 선택지를 펼치고, 집중은 덜 했어야 했다고 단언하고 싶다.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썩은 살이 생 살을 죽이지 못하도록 잘라내야 했다. 암을 키우면 몸이 죽는 것처럼 암적인 관계는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복기를 통해 배운 더 나은 길이었다.




자본시장이 경색되면서 과거에 이름 좀 날리던 이들은 찬밥신세가 됐다. 호랑이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자신의 위세인 듯 의기양양했던 이들은 그들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자신의 위세가 없이 호랑이 뒤에 있다가 사자 뒤에 있다가. 상황 따라 곰 뒤에도 가는 이들은, 언제나 실체가 없다. 실력이 없다. 그들이 시장에서 필요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필요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들은 정보의 비대칭과 정보의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에 가깝다. 인생을 성공한 것처럼 묘수를 부리며 재주를 부리는 듯 하지만, 아무런 기반이 없으니 매일매일이 곡예사의 춤과 같다. 미끄러지면 창피를 피할 수 없다.


그들도 자신의 삶을 복기할까? 복기한 결과는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수를 되돌리고 다시 시작하면 나아질지 찾아냈을까? 아니면 그들 역시 막막한 복기에 그저 이미 망가진 판에서 대마라도 살리기 위한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하나의 수가 거대한 판세를 만드는 것처럼, 인간의 생과 사 역시 하루하루 쌓이는 시간으로 판세를 만든다. 신중하게 두어진 돌이 무너진 판세를 역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 하나로만 이기는 승리는 없다. 돌 하나가 역전의 발판이 된다면 그다음 수부터는 정해진 곳에 완벽한 수를 두어야 마무리까지 이어갈 수 있다. 내가 상대하는 이가 수가 낮다면 엉망으로 둬도 이길 수 있지만, 내가 상대하는 이가 강하다면 수가 완벽해야 한다. 한 번의 실수는 패배로 직결된다.




이미 바둑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어떤 수로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수를 시도하던 그것에 대응하는 수가 인공지능에게는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에도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수처럼 역전의 수가 있을까. 아무리 망가진 인생이라도 전화위복으로 역전의 수를 만들어낼 경우가 있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무심코 살아온 것들이 최선의 선택이 되고, 최선의 선택이 또 다른 최선의 선택을 낳고. 그렇게 역사적인 인물은 버려진 흙바닥 같은 곳에서 찬란한 꽃처럼 피어난다.


인간에게는 그런 힘이 존재한다. 인간은 과거에 100번을 연속으로 졌다고 해도 그 패배 속에서 원인을 찾고, 상대의 약점을 찾고, 방심한 적을 쓰러뜨릴 수를 찾아낼 수 있다. 지속된 패배 속에서 패배자로 스스로를 낙인찍고 무너지는 것도 인간의 결정이고, 지속된 패배 속에서 승리를 노리는 것도 인간의 결정이다. 인간은 양쪽 모두로 향할 수 있는 선택지를 손에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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